■왜 나노기술인가 ■
최근 몇년간 전세계 과학 기술계의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은 과거 그 어느 분야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나노기술을 활용하면 경제적·기술적인 이유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분야의 발전을 위한 돌파구로의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향후 나노기술이 응용될 대표적인 분야로는 경제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가 꼽힌다. 기존 기술로는 ‘반도체 기술의 마(魔)의 벽’으로 불리는 0.1미크론 이하의 리토그라피에 대한 기술적인 대안이 불분명하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생산단가의 지속적인 상승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마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생산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노기술의 잠재력과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는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세인에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나노기술의 잠재력은 나노에 대한 정의에서 드러난다. 연구자마다 조금씩 보는 관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상과 원리가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나노는 0.1나노에서 100나노미터 영역의 크기상의 정의, 새로운 현상이 중요해지는 차원에서의 연구로 정의된다. 즉 단순한 소형화, 미세화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물리·화학적인 현상이 관건이 되는 미래기술로서 내용이 확인된 연구분야보다는 그렇지 않은 분야가 훨씬 잠재적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평가된다.
나노기술의 중요성은 미국에서 왜 처음으로 나노기술이 연구돼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은 나노기술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을 초미세 영역에서의 물질 제어, 새로운 물질개발과 새로운 제조방법 개발 등으로 잡았다. 즉 단순히 크기의 축소보다는 나노기술이라는 새로운 과학적·공학적 방법론의 제시를 통해 인류의 건강·경제 등 모든 생활을 개선시키겠다는 의도다.
일본은 미국의 전방향식 대응 방식, 즉 모든 기술분야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식을 의식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자국이 자랑하는 첨단 IT분야와 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 관련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경제적’ 연구개발 논리가 상당히 녹아있는 모습이다. 독일은 자국의 강점분야에 대한 기반기술 개발 및 발전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기본방향은 장기적 목표보다는 도달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기술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화’ 추세 속에서 선진국과 중국 등의 개발도상국 사이에 끼였다는 ‘넛 크래킹’의 경제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나노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최근 들어 다소 열기가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글로벌’이라는 화두는 이미 우리의 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실이 됐다. 세계 무역기구(WTO) 체계의 등장으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상황논리에 걸맞게 세계 경제가 통합되고 무한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적이 불분명해지는 시대에 기업의 생존은 기술, 특히 원천 기술의 확보에 의해서 결정지어지고 있다. 원천기술은 해외에 의존한 채 저비용이라는 단순 우위를 통해 제품을 수출했던 과거의 산업방식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특히 지적재산권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는 국제적 현실을 인식하면 이런 산업이 도태되는 상황에서 나노기술이라는 무기는 더 없이 중요한 근본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이 처해있는 경제상황도 나노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기술적으로는 일본·미국·독일 등 선진국에 뒤지고, 생산능력 측면에서는 중국 등의 추격으로 주력 기간산업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후발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고 산업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독자적인 기술확보라는 사실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 바로 나노기술에 대한 투자라는게 전문가들의 해법이다.
다행히 국내 기술개발의 역사는 해외선진국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 분야가 연구인력의 창의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상당히 우수한 나노기술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나노기술은 아직까지 완전한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아 한국이 스스로의 독자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다만 선진국에 비해 예산과 자원이 부족해 우리나라에 맞는 강점 분야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선택하고 집중을 잘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원천기술 보유 가능성이 높은 분야와 주력기간산업 및 미래전략 산업 등에 대한 높은 파급효과가 예측되는 분야 등이 제시되고 있다.
<박지환기자 daebak@etnews.co.kr>
■나노기술의 정의와 개발의 필요성 ■
나노는 난쟁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된 말로 ‘작다’는 뜻이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이며 머리카락 굵기보다 약 8만배 작은 물리학적 계량 단위다.
나노기술(NT)이란 나노미터 범위 크기인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이 갖는 독특한 성질과 현상을 찾아내 정렬시키거나 조합해 매우 유용한 성질의 소재나 시스템을 생산하는 과학과 기술을 통칭한다.
최첨단 현미경을 통해 겨우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원자나 분자를 마음대로 조작해 신물질을 만들거나 혈관 내부나 세포 등에서 활동할 수 있는 초미세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나노기술의 세계다.
흔히 보는 물질이라도 나노미터 크기를 갖는 나노물질이 되면 물리적·화학적으로 독특한 성질과 현상이 나타난다. 가령 매우 안정해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금은 나노크기가 되면 매우 강한 촉매 반응성을 보이며 20㎚ 이하가 되면 빨간색을 띠는 등 그 성질이 변한다.
나노기술은 원래 반도체 미세기술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연구가 시작됐으나 최근에는 전자·정보통신에 이어 기계·화학·바이오·에너지 등 모든 산업에 응용할 수 있도록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제품크기를 작게하는 것은 물론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게도 해준다. 나노미터 크기의 회로선 폭을 이용해 기억소자를 만들 경우 지금의 기가바이트(Gb)보다 1000배 빠른 속도와 용량의 테라바이트급으로 집적화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를 데스크톱 크기로 작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노기술이 중요한 것은 단지 아주 미세한 세계까지도 측정하고 관찰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노의 세계는 물질의 최소 단위로 알려진 분자 또는 원자의 세계로 진입해 이를 조작하고 활용할 수 있다. 즉 물질의 최소 단위까지 인간의 통제력이 미칠 수 있는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노의 세계다.
■<기고>`10억분의 1미터`시대 열린다 ■
*신성철 KAIST 나노과학기술연구소 소장 shin@kaist.ac.kr(사진)
20세기 후반을 백만분의 1m 크기의 기술을 다루는 마이크로시대라 한다면 21세기는 마이크로의 천분의 일, 즉 10억분의 1m인 나노크기의 기술을 다루는 나노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나노기술은 분자수준의 극미세 물질 세계에서 새로운 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미지의 연구영역이며, 기술구현을 위해 현재의 과학기술 한계 극복을 위한 과학적·공학적 돌파구를 요하는 도전적 영역으로 21세기에 엄청난 기술적 혁명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나노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미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보고서는 “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물질 제어는 모든 인간 창조물의 생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 영향은 20세기 반도체·항생제·폴리머 개발을 합친 것 보다 더 클 것이라고 기대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노기술이 가까운 장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분야는 정보기술분야다. 현재의 반도체 메모리는 64기가비트 이상의 고집적화에는 물리적·기술적 한계가 있어 이를 극복할 새로운 메모리 기술이 요구된다. 그러나 나노자성박막을 이용한 자성체 메모리(MRAM)가 개발되면 비휘발성·저전력 소모의 테라비트급 고집적 메모리를 실현할 수 있다. 또 약 20㎚ 직경의 패턴화된 나노자성매체가 개발되면 20만권의 장서를 100원짜리 동전크기의 하드디스크에 수록할 수 있게 된다.
생체계가 나노 크기의 분자 거동에 좌우되기 때문에 나노기술 혁명은 생명공학 및 의학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생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물리·화학적 현상을 나노미터 수준에서 이해하고 응용한다면 새로운 개념의 바이오센서·생화학 핀세트·약물전달 시스템·수술용 나노로봇 등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보고된 나노미터 크기의 생체모터를 응용하면 나노로봇이 인체 내에서 막힌 혈관을 뚫기도 하고 암세포만 선택하여 공격하는 꿈같은 날이 도래할 것이다.
나노기술은 정보기술·생명공학 등 첨단 기술분야뿐 아니라 전통산업에서도 기능성 나노신소재를 이용하여 지대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나노복합소재를 이용하여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은 자동차·항공기 부품을 개발하거나 나노입자를 이용한 고기능의 화장품 개발이 좋은 예다.
그렇다면 인류문명사에 나노기술 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류는 농업시대를 통해 땅을 정복하였고 산업시대의 자동차, 비행기의 발명을 통해 공간을 정복하였으며, 20세기 후반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을 발명하면서 시간을 정복하게 되었다.
21세기 들어오면서 인간 유전정보를 담은 게놈지도 완성을 서곡으로 바이오기술 시대에 접어들면서 질병을 정복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어서 도래하는 시대가 나노크기 영역에서 물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제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물질을 정복하는 나노기술 시대다.
질병의 근원적 정복도 1∼20㎚ 크기의 단백질을 조작할 수 있는 나노기술의 기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을 위시한 여러국가에서 범국가적 차원으로 나노기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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