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장소를 옮기는데 가장 효과적인 기동수단은 무엇일까. 정답:바퀴를 단다.
인류 최대의 발명품으로 불리는 바퀴는 21세기 첨단 로봇에도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사람이 만든 탈 것 중에 땅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모두 바퀴로 움직인다. 물건을 옮길 때 저항을 최소화하는 이상적인 기계장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퀴를 단 주행식 로봇은 행동반경이 평평한 장소로 제한되지만 기계적 신뢰성이 워낙 높아 로봇개발자가 별로 신경쓸 일이 없다. 반면 전시효과를 위해 로봇에 동물처럼 관절식 다리를 붙일 경우 문제가 아주 복잡해진다.
우선 로봇다리의 각 관절부에 들어가는 수십개의 모터를 한꺼번에 제어해서 그럴듯하게 걸음마를 시키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바퀴식이면 모터 하나로도 충분히 움직일 로봇이 기계식 다리를 붙이면 무게도 엄청 늘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나마 다리가 4개 이상 달린 다족로봇은 계단이나 험로를 비교적 쉽게 주파하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요즘 국내외 로봇업체들이 죽어라고 매달리는 보행식 로봇은 거의 대부분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이족 로봇이다.
이족로봇은 본래 실용성과는 담을 쌓은 제품이라 보면 된다. 무엇보다 잘 넘어진다. 로봇이 한쪽 발을 들어도 쓰러지지 않도록 몸 전체로 균형을 잡으려면 거의 예술의 경지에 근접한 공학설계가 필요하다. 다리로 움직인다고 해서 속도가 딱히 빠른 것도 아니다. 이족로봇의 최고봉인 혼다의 아시모도 시속 2㎞ 정도로 어슬렁거리는 것이 고작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조금 가까워진 이웃 일본은 이족보행 로봇의 천국이다. 일본의 과학자들은 80년대 중반부터 두 다리로 걷는 로봇연구에 매달렸고 결국 로봇에게 거의 완벽한 직립보행술을 전수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일본에선 혼다의 아시모를 정점으로 소니의 SDR-4X, 저가형 이족로봇 피노 등 이족로봇의 대중화가 급속히 진행중이다. 일본사람들이 가뜩이나 돈값을 못하는 첨단로봇에 거추장스런 이족보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로봇이 두 다리로 움직이면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이면 어디나 접근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당신이 기계적으로 완벽한 두발 로봇을 구입한다면 자다가 침대 안으로 들어온 로봇을 발견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또 한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려면 사람과 형태가 비슷하면 더욱 감성적 교류가 쉽겠지요.”
몇달 전 일본 로봇쇼에 가서 이족로봇 ‘아시모’의 데모장면을 본 적이 있다. 비판적으로 관찰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아시모’가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뭐랄까 어린 자식이 첫 걸음마를 떼는 광경처럼 가슴 뿌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제야 일본인들을 이해하게 됐다. 로봇이 인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두 발로 걷는 것보다 더 극적인 퍼포먼스는 없는 것이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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