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ETRI 바이오정보연구팀장·박사 shp@etri.re.kr
과학기술자들에게 ‘인간적인, 인간미를 지닌, 따뜻하고 포용적이며 실수를 용납할 줄 아는’과 같은 지칭어를 쓴다면 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 있다.
과학기술의 원리는 어떤 대상이더라도 보편 타당해야 하고 일률적이어야 한다. 덧붙여 ‘오캄의 면도날’, 즉 가장 간단한 것이 답을 준다는 원칙에 맞아야 한다. 과학기술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이것이 업무상의 사고방식이나 습관으로 바뀌어 일반인들이 보기에 매우 딱딱한 존재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대가들을 만나면 많은 경우 괴팍스러우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한가지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학문과 기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순수함과 인간미다.
최근 타계한 컴퓨터 자료 구조론의 대가이자 소프트웨어 공학분야를 창시한 인물 중에 한명으로 평가받는 다익스트라 교수는 강의 중 ‘Can machine think?’라는 질문에 ‘Can submarine swim?’이라는 답으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또 우주에 존재하는 네가지 힘 중 두가지인 전기력과 약력을 이론적으로 통일할 때 W, Z 중간자라는 소립자들의 존재를 예측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와인버그 교수는 종종 세익스피어의 문구를 사람들 앞에서 암송하곤 했다. 같은 이론으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살람 박사는 일부다처제의 파키스탄 관례에 따라 두 부인과 살고 있었는데,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고 연수연구원 자격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그분의 연구실에서 연구를 함께 하면서 보여준 자상하고 따뜻한 인간미에 감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미국 토크쇼 진행자들이 토크쇼를 진행하기 가장 어려운 상대로 과학기술자를 꼽는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과학기술자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비현실적이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유머가 걸러지지 않은 채 표출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일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내재적으로 가장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지극히 순수한 집단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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