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월드컵을 IT통일 기반으로

◆변정용 동국대 교수 byunjy@dongguk.ac.kr

 지금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떠 있고 그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다.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에, 개최국이라는 입장에 걸맞은 성과를 얻기에 굶주려 있었다. 그래서 사상 첫 1승에 이어 한달음에 16강 목표를 달성해버렸다. 전국이 흥분의 도가니에 젖어들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어서 우승 후보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4강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 날은 집집마다 창문을 열고 ‘대∼한민국’을 합창하며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과 그 감격의 기쁨을 나누며 4700만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이 승리에 북한도 한몫을 했다. 8강 경기가 열리던 대전 월드컵 경기장의 붉은 악마 응원석에는 ‘Again 1966’이라는 문구가 표시되었다. 이것은 이탈리아 선수들을 주눅들게 하려는 것이다. 36년 전 북한은 바로 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맞아 우리보다 먼저 8강 신화를 이룩하였고, 이탈리아에 ‘공한증’의 잠재의식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적어도 한국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판단한다.

 이처럼 남과 북은 비록 선언적 결정은 없었지만 이미 36년 전부터 함께 세계인의 축제인 2002 한일 월드컵 준비에 일조를 해오고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남북은 단순히 국토의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나 사상이 다름으로 인한 인식의 차이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장점을 보는 데 인색해 왔다. 이제는 민족적 정서와 마음의 상처를 돌보며 인식을 전환하는 데 속도를 높였으면 한다.

 간혹 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것이 10여년 전이라면 가능하던 일일까를 상정해본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요즘은 TV에서 북한영화가 방영되고, 코미디프로그램에 북한 관련 고정 코너가 등장하며, 북한에서 생산된 공산품이나 농산물이 백화점에서 판매되기도 해 그 어느 때보다 북한에 관련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에 대하여 세상이 변한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곤 한다.

 뿐만이 아니다. 일정상의 문제로 연기되기는 했지만 북한이 6월말 개최하려 했던 평양현대정보기술국제포럼 및 전람회 계획도, 이제까지 정치적·지리적 관점에서만 보아왔던 통일이라는 말을 다른 차원에서 느껴지도록 하는 대목이다.

평범한 학자들도 학술적 과제를 가지고 평양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것이 조금 더 발전해 남북 양측의 제도적 뒷받침 아래 상호 방문의 대상 범위가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도 예전에는 언론이 통제되는 시절이 있었고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언젠가 그런 일들이 모든 사람에게 열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막연하지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이 우리도 변했으며 세상은 지금도 그 이상을 위하여 발전적으로 변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아직도 답보 상태인 부분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정부는 냉정하더라도 민간은 동포애로서 서로 돕기에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시작하여 하나 둘 꾀어나갈 때 불신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 경계는 하지만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자세로 변화의 고리를 잡아당겨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남쪽에는 월드컵, 북쪽에는 아리랑축전이 같은 기간에 열리고 있다. 남한은 88서울올림픽에 이어 월드컵을 통해 정보통신 선진국임을 전세계를 향하여 알렸다. 아리랑축전은 형식적 측면만 볼 때 대집단 체조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콘텐츠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 고속도로를 달릴 다양한 콘텐츠, 즉 정보 자동차가 필요하다. 최근 정보통신분야의 남북협력에 기반하여 세계를 감동시킬 소재를 기획하고 우수한 인적 자원과 우수한 콘텐츠 제작 역량을 결집하여 상생전략으로 세계를 선도해나갈 때, 통일절 기념식이 개최되는 그 날이 미지의 시간 속에서 더욱 힘찬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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