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샌드위치인가….’
일본·미국 등 선진국을 따라잡기에는 힘에 부치고 중국·대만 등 후발국에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국내 인쇄회로기판(PCB)산업의 현실을 빚댄 말이다.
국내 PCB산업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 전자산업 발전과 궤적을 같이하며 성장가도를 걸어 왔다. 그러나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신기술 도입 등으로 국내 PCB업계의 입지는 날로 위축되는 모습이다.
특히 업계는 경쟁국들이 PCB산업의 중요성을 인식, PCB를 반도체와 더불어 첨단산업 분야로 규정하고 다양한 정책지원을 펼치는 데 대해 적잖은 부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2000년 하반기 세계 경기 불황과 정보기술(IT)산업의 침체 등으로 위기를 맞았던 국내 업체들은 이에 따라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더구나 컴퓨터·이동통신단말기 등의 고성능화와 초소형화 추세로 PCB산업은 기술적 진전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미국·일본 등과 함께 이러한 기술을 적용한 첨단제품을 상용화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상당수 업체는 거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첨단기술 분야에 뛰어들지 못해 큰 어려움에 처했다.
핀(pin)간 5라인 등 고밀도화 및 다층화된 첨단 PCB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설비투자에 반해 낮은 생산성과 지속적인 비용증가를 각오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투자대 효율 측면에서 보면 이같은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하소연이다.
자본력이 탄탄하지 못한 PCB업체는 세계시장에서 승부할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장치산업의 엄격한 규율이다. 실제 전세계 4000여개 PCB업체 가운데 자본력이 탄탄한 대기업 계열의 100개 업체가 전세계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 뒤처진 기초·소재산업과 설비기술은 국내 PCB업체들에 또 다른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선진국을 추격할 시기를 영원히 놓치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맹추격은 더욱 걱정되는 부분이다. 생산량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고, 기술도 2∼3년 안에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저임금과 내수시장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대량 설비체계를 갖춘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경쟁력으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대대적인 기술투자를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선두주자와 후발주자의 견제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
첨단기판의 양산에 매달려서는 수요부진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자금투입의 한계에 부딪혀 중국처럼 대대적인 시설투자로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세계 기술동향과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해 기술력을 한층 높이는 등 ‘기술고도화’와 ‘경영 효율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업계에 주문하고 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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