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닷넷과 헤로인

 ◆<김경묵 기획심의부장 kmkim@etnews.co.kr>

“미국에서는 헤로인을 줄 때 처음에는 공짜로 준다. 중독시킨 후에 비싼가격을 받고 팔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나라를 방문한 선의 스콧 맥닐리 회장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닷넷 전략을 빗대 한 발언이다. 언뜻 듣기에는 미국 유수의 IT 총수가 한 말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막말에 가까운 수위다. 단순하게 닷넷 전략이 자사의 영업을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말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MS 줄서기가 한창인 우리나라 기업들에 섬뜩함을 주기도 한다.

 선 회장의 말대로라면 KT를 비롯한 주요 SI업계와 금융권 등 유수의 우리기업들은 ‘헤로인 예비중독자’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MS는 세계 모든 기업이 두려워할 만큼 IT운용체계의 핵심인 플랫폼(OS)시장을 꽉잡은 강자이기 때문이다. 이미 윈도 시리즈로 PC용 OS시장을 완벽하게 독점하고 여세를 몰아 윈도NT로 서버OS 시장도 크게 잠식중이다. 이제 또 닷넷을 통해 기업용시장진입을 노림으로써 MS는 명실상부한 전세계 네트워크의 장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MS를 상대로 우리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게도 무기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자체가 테스트베드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디지털인프라가 잘 깔린 곳은 어디에도 없다. MS를 포함한 세계 IT업체들이 앞다퉈 우리기업과 손잡으려 하는 것도 한국을 자신들의 신기술 검증 장소로 이용해 보겠다는 의도가 짙다. 그런 만큼 공정한 거래를 위해서는 우리도 최소한의 이용료는 받아야 한다.

 최소한의 이용료는 다름 아닌 우리기업들의 적극적인 포지셔닝(참여) 확보다. 닷넷만 해도 아직 컨셉트에 가깝지 구체적인 실체가 보이는 솔루션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이 좀더 완벽해지면 MS의 핵심기술 외에 서비스의 편리성을 높이는 요소기술들이 상당부분 보완돼야 한다. 테스트무대가 우리나라라는 점은 분명 우리 IT기업들에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소프트웨어 역사를 보면 핵심 플랫폼에 사용이 편리한 주기능 솔루션을 붙였을 때 유저들의 사용이 늘어나 사실상의 표준이 되고는 했다. 또 이럴 경우 주기능 솔루션을 가진 쪽이 목소리를 높이며 바겐파워를 가진 경우도 많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 대가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팽배하다. 의식없는 MS줄서기가 결국 국내 솔루션 산업의 황폐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다. 이미 MS는 단 2∼3주 교육만으로 닷넷서비스의 개발을 얼마든지 가능케 해주는 ‘비주얼스튜디오닷넷’ 무상교육을 실시중이다. MS의 노림수는 이를 통해 유닉스 시스템 일색이던 대기업 전산실의 전산환경을 윈도NT 기반의 MS 제품으로 모두 대체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원하는 국내 솔루션업체들의 입지를 한층 좁게 만드는 것은 물론 친 MS업체 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용 OS시장의 독점을 노린 MS의 닷넷전략이 성공할 경우 결국 우리는 ‘MS 라운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생활에서 MS솔루션 없이는 어떤 생활도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국(MS)은 솔루션 공급을 미끼로 FX같은 무기도 팔수도 있고 각종 개인정보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마음대로 펼칠 수 있다.

 맥닐리가 지적한 ‘헤로인 중독’이 이를 내다본 혜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분명 안전장치가 필요한 시기다. 우리의 살 길은 헤로인을 더 마약답게 만드는 특화기술을 갖거나 일거에 헤로인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해독제를 만드는 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