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경쟁력강화를 위한 제언

 세계 IT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미 HP와 컴팩의 합병이 한 고비를 넘겼다. 합병이냐 아니면 무산이냐의 최종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합병의 최대 분수령이 될 HP의 주총과 컴팩의 주총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이면서 합병을 주도하고 있는 칼리 피오리나와 창업자의 가문 출신이면서 합병을 반대하는 월터 휴렛간의 이른바 ‘쿠퍼티노의 혈투’에서 누가 최종 승자인지는 아직 명쾌하게 가려지지 않았지만 대세는 세계 IT산업의 최대 기업인 합병회사의 탄생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닌 HP와 컴팩의 합병은 협상과정 만큼이나 그 배경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HP의 창업자 가문에서 합병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세계적인 컴퓨터, 프린터업체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HP 그리고 세계 PC시장의 절대강자인 컴팩 양사는 각각 독립된 회사만으로서도 세계 컴퓨터시장을 호령할 수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미국을 움직이는 여성기업인으로서 항상 맨 위에 올라있는 여걸 피오리나 HP CEO는 경기침체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으며 세계 1위의 PC기업인 컴팩과의 합병으로 이를 구체화시켰다. 합병을 통해 원감을 절감하고 제품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안이라는 것. 이번 합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합병회사는 말 그대로 연간 매출 800억달러의 공룡기업이면서 PC, 프린터, 서버 등 IT 전분야에서 확고한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급변하는 경쟁 속에서 아무런 준비없이 현재의 영광이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망상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이번 합병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HP가 컴팩의 합병을 주도한 것은 현재의 위기상황에 안주하기보다는 이를 극복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합병이 피오리나의 주장대로 성공적인 결말을 맺을 것인지 아니면 휴렛의 주장처럼 고객이나 주주들에게 피해를 가져올 최악수가 될 것인지는 사실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에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번 HP와 컴팩의 합병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자본주의의 모습은 미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세계경제 속에 내몰린 우리 기업들에 던지는 교훈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재와 미래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문경영인의 2년여에 걸친 고민과 이를 결행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 우리식대로 분석하면 오너와 고용 사장간의 대립, 여기에 합병이냐 아니냐를 놓고 마치 대통령 선거전에서나 볼 법한 주주들의 최종의견을 묻는 해결과정 등은 우리 기업환경에서는 낯설기만한 모습이다.

 빅딜, M&A, 매각 등 그동안 우리 기업사를 바꿔 놓을 만한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같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경영진이나 주주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는가, 또 그 내용도 과연 고객과 주주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자문해 보자.

 기업 경영층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빅딜의 후유증은 대우자동차와 하이닉스, 대우전자 등을 외국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시켰으며 아직도 우리경제의 짐으로 남아있다. 또 그룹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는 수많은 대기업들은 자신의 미래를 최고경영자가 아닌 지분조차 없는 그룹총수에게 맡겨놓고 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당연한 권리참여를 막기 위해 한해 최대의 잔치자리가 돼야 할 주주총회마저 하루에 몰아 처리하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세계 유수 기업들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이번 HP와 컴팩의 합병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이번 HP와 컴팩의 합병만큼이나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승욱 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