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산이다.’
제조물책임(PL)법이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면 제조업체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PL 시행으로 제조원가의 부담, 인력자원의 낭비, 신제품 개발의 지연, 특허 및 고발 소송, 기업이미지 실추 등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 쌓여있다. 물론 제조물의 안전성 강화, 기업경쟁력 강화, 소비자보호 충실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제조업체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만 피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었던 과거의 호시절은 지나가고 PL법이 시행되면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 입증한다면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이같은 숙제를 피할 길이 없게 됐다.
특히 대기업들은 내부적으로 PL위험관리 대책을 수립하고 인적·물적 전담조직을 구성해 PL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중소업체는 기업의 여건상 대기업처럼 인적·물적으로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커다란 문제점이 되고 있다.
우선 PL법이 시행되는 초기엔 중소·중견업체들은 엄청난 소송 봇물에 휘말릴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의 국민생활센터 및 소비생활센터에 접수된 통계를 보면 PL시행 이전엔 고발·상담수가 3071건에 그쳤으나 95년 7월 시행 후 첫해 5765건, 2년째 5305건, 3년째 4389건, 4년째 3850건, 5년째 3760건으로 초기에는 두배 가까이 급증하다가 점차 주춤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PL센터 임영주 소장은 “1∼2년간의 과도기 동안 PL방어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며 “특히 악의적인 소송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 피해의 원인을 정확히 밝힐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우전자 정책조사팀의 김창중 대리도 “PL사고는 대부분 화재로 인한 것인데 화재가 발생할 경우 명확하게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원인규명기관이 부족해 사고원인을 찾는 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한 제조업체들은 소비자가 아닌 엉뚱하게 경쟁업체의 특허소송으로 곤혹을 치를 수 있다. A업체가 소비자의 감전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차단장치를 설계해 특허등록을 마쳤는데 B업체가 이와 유사한 장치를 생산, 유통시켰다가는 A업체로부터 소송당하기 십상이다.
LG전자 품질센터 김재영 선임연구원은 “안전성이 보장된 제품을 개발, 생산하기 위해 경쟁제품을 뜯어보고 안전장치를 분석하면서 그 제품의 안전장치가 특허로 등록돼 있는지를 확인하고 특허를 피해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중소업체도 힘들지만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PL법 시행 이후엔 기업의 정보가 더 많이 샐 수도 있다. 제조업체들이 제품의 결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좀더 품질이 좋은 협력업체(부품업체, 주문자상표업체)의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수한 협력업체는 적다보니 한 곳에 경쟁업체의 주문이 몰리면서 대외비 성격의 정보가 줄줄이 흘러나갈 수 있기 때문에 보안대책 마련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PL에 대한 업체와 국민들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조업에 과다한 책임을 부과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한다면 신제품 출시의 지연과 잦은 소송 등으로 업체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PL법이 조기 정착되기 위해선 제조업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정부도 원만한 제도실행을 위해 원인규명 기관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대국민 홍보를 통해 제도의 오용을 막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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