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광대역 인터넷은 국가의 전자·정보통신 인프라 성숙도를 재는 척도로 활용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광대역 인터넷은 다른 지역과 같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는 2005년까지 유럽의 가정내 인터넷 사용자들 중 70%는 저속 인터넷 접속수단을 이용할 전망이다. 대부분의 유럽 소비자들이 아날로그 모뎀을 사용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특히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ISDN이 주요 기술로 남아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유럽이 광대역화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유럽의 소비자들 대부분이 인터넷 접속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통신사업자들 역시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특별한 애플리케이션 없이는 광대역 서비스 가격을 낮추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럽의 통신사업자들은 원격 근무와 같은 광대역 서비스 프리미엄 시장이 규모가 클 수 없는데다 광대역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적극 홍보할 경우 현재 수입의 원천인 다이얼업 인터넷 접속의 수입이 잠식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 근거, 가트너는 유럽 통신사업자들에 대해 광대역 인터넷에 대한 투자를 연기하라고 제의하고 있다. 또 국가별로 특화된 광대역 마케팅 계획을 마련하라고 충고한다.
전자신문사와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EC커런트’ 이번 주 주제는 유럽 각국의 광대역 인터넷 도입현황과 이에 따른 사업자들의 전략수립에 대한 내용이다.
가트너는 유럽의 통신사업자와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이 저속에 맞도록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최적화하고 광대역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미루라고 조언한다. 가트너에 따르면 유럽 사업자들은 현실적이면서도 국가별로 특화된 광대역 마케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예컨대 네덜란드 사업자들은 광대역 서비스를 도입해도 수익을 볼 수 있지만 그리스에서는 같은 이익을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유는 유럽의 광대역 비즈니스가 아직 취약하기 때문이다.
ADSL(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이나 케이블모뎀을 이용한 광대역 인터넷 접속은 표준 아날로그 모뎀이나 ISDN에 비해 훨씬 더 빠른 데이터 전송속도를 제공한다. 이에 힘입어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 ADSL은 지난 2년 동안 상당한 가입자를 확보했다. 미국에서도 빠른 사업 확장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추진은 되지만 통신회사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있다.
유럽 언론과 정치인들은 향후 전자상거래나 정보사회로 가는 지름길로 광대역 인터넷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실상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유럽이 미국이나 한국 등에 비해 광대역 비즈니스 기회가 훨씬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다이얼업 접속으로 인해 통신업체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은 회선임대로 국한돼 있다. 광대역 인터넷 접속은 완전히 새로운 수입원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미국 통신업체들은 광대역 인터넷 도입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그러나 유럽 사업자들은 소비자들의 다이얼업 인터넷 접속에 따른 종량제 요금제가 주요 수입원이다. 소비자들이 다이얼업에서 광대역 서비스로 접속수단을 변경한다면 광대역 서비스는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수입 감소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유럽 통신사업자들의 전략은 명확해진다. 광대역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합리화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저속 인터넷 접속수단을 통해 지출했던 것보다 광대역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훨씬 많이 지출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추가 요금을 기꺼이 지불하도록 설득할 만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는 어떤 것이 있을까. 후보로는 영화·TV 프로그램 및 음악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수입 창출 기회의 활용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미국에서도 광대역 콘텐츠 포털인 익사이트앳홈(Excite@Home)이 파산법 11조에 의거,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했고 지난해 거래로 무려 7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유럽도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 업체인 비디오네트웍스는 서비스 손실로 자사의 홈초이스(HomeChoice)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같은 비즈니스 실패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대부분의 통신사업자들은 소비자 DSL 시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통신사업자들이 수익성 있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미디어 업체와 e마케터들은 유럽 광대역 투자 계획을 무제한 보류해야 할 지경에 달한 것이다.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유럽 소비자는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려 들지 않는다. 프랑스·독일 및 영국 가정의 불과 10%만이 오는 2005년까지 광대역 인터넷 접속을 이용할 전망이다. 그림1 참조
하지만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로선 이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는 것 조차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좀더 빠른 인터넷 접속을 위해 높은 요금을 지불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전화 요금을 낮추는데 있다. 광대역 서비스가 현재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터넷 이용가정이 10% 미만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대역 서비스의 빠른 보급을 위해서는 서비스 요금이 현재의 50∼60유로에서 30유로 미만으로 인하돼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요금을 받는다면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심각한 투자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사업자들로서는 별도의 수입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소비자들은 유료 인터넷 콘텐츠는 기피한다. 온라인 게임, 도박 및 포르노는 틈새 시장을 제공하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기꺼이 요금을 내고 이용할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은 아직 개발되지 못한 상태다.
결국 기회는 틈새 시장에 있다. 통신사업자들은 소비자보다는 기업들이 요금 지불에 긍정적 시각을 갖는다는 점에서 종종 원격 근무를 중요한 시장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시장은 소규모 틈새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 성인 노동인구 중 5%만이 1주일에 1일 이상 재택근무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정내 인터넷 사용자들의 수치는 약간 더 높은 7%에 그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9·11 테러사건과 대테러전쟁을 겪으면서 보안과 여행준비를 재검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재택근무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이렇다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통신업체들로서는 틈새시장을 겨냥해 교환국을 업그레이드했음에도 사용자 수가 늘지 않는다면 투자를 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높은 위험부담도 유럽의 광대역 인터넷 확산에 장해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법적 규제에 대한 승인이 필요한 DSL 서비스 제공업체는 케이블TV 사업자의 콘텐츠를 복제하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유료TV나 전화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TV와 VOD를 DSL을 통해 공급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터넷 접속 이상의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경제여건에선 투자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나아가 이런 방식은 DSL 사업자가 디지털 케이블 및 위성TV 사업자들과 가입자 확보 경쟁을 전개해야 하는 상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낙관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유럽의 광대역 서비스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시장개발은 현지여건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표2 참조
특히 공급·수요 및 현재의 인프라와 관련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여기에는 △현지 전화네트워크의 상황과 교환국수 △교환국에 인접한 가구수 △양방향 케이블 TV 네트워크가 지나가는 가구수 △인터넷 접속 수준 및 월정액으로 ISP 요금을 지불하는 가구수 등이 있다.
실제 케이블 TV 사업자를 포함한 경쟁 통신업체들이 추구하는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신사업자들은 추가비용을 들여 광대역 서비스를 이용할 시장의 소비자 영역에 관한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이들 요소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유럽 통신사업자들이 국가 및 기업별 광대역 서비스 조건을 고려하는데 실패할 경우 전체 비즈니스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유럽 통신사업자들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광대역 인터넷 접속 기술의 도입은 지역 여건에 따라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ADSL 보급은 독일과 스웨덴에서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며 케이블 모뎀은 오스트리아·벨기에·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에서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광대역 인터넷 접속을 위해 경쟁력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 통신 사업자들은 ‘로컬 루프 언번들링(local loop unbundling)’ 등 지역 교환국과 가정을 잇는 동선에 대한 접속을 가능케 함으로써 경쟁을 높이려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의 가격 수준에서의 수요는 여러 공급업체를 지원하기에는 저조한 수준이다.
결국 사업자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첫째, 저속 인터넷 접속에 맞게 전자상거래 웹 사이트를 최적화해야 한다. 광대역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늦추고 비용이 많이 드는 미디어 광고는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
둘째, 현실적이고 국가별로 특화된 광대역 마케팅 계획들을 세워야 한다. 광대역 서비스 보급률이 높은 네덜란드·벨기에 및 오스트리아 등을 대상으로 한 전략과 보급률이 낮은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전략이 같을 수는 없다.
셋째, ISP들은 기업 시장, 특히 소규모 업체와 원격 근무 및 소호와 같은 수익성 있는 틈새시장에 광대역 서비스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전국적인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투자수익을 높일 수 있는 잠재고객이 밀집되어 있는 개별 교환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정리=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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