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마련된 SW 중복개발방지 원칙이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시행령이 없어 단순 구호로 그치고 있는 것은 현재 전자정부 사업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SW 중복개발 방지는 그 자체로 직접적인 예산절감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각 행정기관끼리 비슷한 업무성격을 띠고 있는 부분을 분석함으로써 업무 프로세스 혁신과 표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 프로젝트에서 관련 전담기구와 세부 시행령, 실행방법론이 마련되지 않음으로써 SW중복개발 방지 원칙의 기본 취지가 크게 흐려지고 있다.
◇‘대원칙은 확고했지만…’=정부는 ‘세계 일류 국가 도약을 위한 전자정부 구현전략’의 기본 원칙으로 ‘기존 정보자원의 공동이용·연계 및 중복개발 방지’ ‘여러 부처 관련사업의 단일사업으로 통합추진’ ‘범정부적 정보화 표준지침 개발·적용’ 등의 대전제를 제시했다.
이같은 원칙에 의거해 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 정부 통합 전자조달 시스템 구축 등 전자정부 11대 중점 추진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었다. 특히 이를 위해 지난 3월 공포하고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행정업무 등의 전자화 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소프트웨어 중복개발 방지의 원칙(제13조)을 세우고 유관조항인 업무혁신 선행의 원칙(제7조), 행정기관의 업무재설계(제24조)를 명문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률시행 7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 법률 조문을 보완·실행할 수 있는 시행령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시행령이 없는 이상 이를 실제 11대 과제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특히 부처 이기주의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시행령과 관련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같은 대원칙은 단순히 부처내에서만 사업 내용 및 기능을 통합하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강력한 실행지침 필요=물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SW중복개발 방지를 위해서는 행정 정부 업무 절차의 중복성 분석부터 업무 절차의 표준화 및 개선방안 마련, 업무 중복성 배제 및 표준절차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보기술의 채용 및 적용 등에 관한 연구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개별기업의 업무혁신 과정도 어려운 판에 업무 성격이 다르고 오랜 시간 동안 상이한 프로세스로 업무를 처리해온 정부기관 전체의 업무 표준화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부처 이기주의에다 전자정부의 추진 연륜이 짧고 전자정부 추진체계도 아직 완결된 형태가 아닌 만큼 이를 단기간내에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W중복개발 방지나 업무혁신은 전자정부의 대전제에 해당하는 원칙인 만큼 중점과제로 삼아야하는데도 7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실행 지침 하나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강력한 시행령이 마련돼도 실제 실천에서는 어려움이 따르는 판에 아예 이런 실행 지침조차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정부가 어떻게 SW중복개발 방지를 통한 예산절감과 업무 표준화를 이루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고 있다.
◇현실적인 방안 마련 움직임도=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계 및 유관기관 일부에서는 연구과제를 설정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부 산하기구인 한국소프트웨어컴포넌트컨소시엄(KCSC)에서는 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해 중순부터 ‘전자정부 정보자원의 공동이용 및 중복개발 방지를 위한 컴포넌트형 SW개발(CBD) 도입 및 적용방안 연구’라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KCSC는 구체적인 시행령이 마련돼야 하지만 업무 중복성 배제 및 표준절차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IT활용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가 재사용성에 초점을 둔 CBD 개발의 적용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11대 중점 추진과제 중 예산규모 200억원이 넘는 ‘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 ‘범정부적 통합전산 환경의 단계적 구축’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 ‘표준 인사관리 시스템 구축’ ‘정보통합 전자조달시스템 구축’ 등 5개 과제를 대상으로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과제에 대한 공통 업무분석 및 정보자원의 공동이용, 재사용성에 대한 검토 및 분석을 벌인 후 CBD 도입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과제를 도출해 적용의 타당성, 효과, 추진방안을 제시할 방침이다. 또 도출된 과제에 대한 업무 구조도 작성 및 표준 업무 프로세스를 작성하는 한편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 CBD 기반 전자정부 구축현황 조사에도 나서 이 연구결과물이 전자정부 법률 시행에 적용될 수 있도록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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