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산업의 역사를 주도해온 메디슨의 부도로 벤처업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메디슨 붕괴의 원인과 파장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 등 소위 1세대 벤처인에 의한 벤처 신화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2막의 커튼이 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총 3회에 걸쳐 1세대 벤처의 공과 실을 살펴보고 다가올 벤처 신화의 2막을 살펴본다. 편집자
초창기 국내 벤처산업을 주도하며 벤처 신화의 상징이 돼온 메디슨호가 결국 유동성 위기를 피하지 못하고 최종 부도처리돼 좌초됐다.
메디슨을 이끌던 이민화 전 회장은 지난 95년부터 벤처기업협회와 벤처기업지원법 구성에 주도적으로 참여, 척박한 국내 벤처생태계를 실체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특히 초생명기업론을 핵심으로 한 ‘벤처연방제’라는 독특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60여개 벤처기업의 직간접 투자에 나서 기업간 네트워크를 구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리한 차입경영과 사업 확장, 벤처투자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는 등 ‘재벌 흉내내기’라는 비판과 함께 그가 내건 압축성장의 벤처 신화는 이제 과거로 던져졌다.
하지만 이민화 전 회장을 비롯한 1세대 벤처인이 발아기에 있던 국내 벤처산업의 성장에 미친 영향과 성과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사장, 염진섭 전 야후 사장, 전하진 전 한컴 사장, 오상수 전 새롬 사장 등 소위 1세대 및 유명 벤처 CEO의 퇴진이 잇따라 벤처의 세대교체와 함께 이들의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진정한 벤처 신화 2막의 도래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벤처생태계 개척=이들 1세대 벤처 CEO는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바탕으로 한 대기업 위주의 기존 경제 패러다임에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해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쟁력있는 기술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만으로 세워진 소기업이 모험정신을 기반으로 위험을 극복하며 자금유치와 기업공개(IPO) 등 일련의 기업 활동에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벤처기업육성특별법·코스닥제도·스톡옵션·실험실창업·벤처밸리 및 집적시설·휴먼네트워크·벤처캐피털과 엔젤 등 우리 경제 환경에서는 다소 생소하던 제도와 개념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벤처산업을 21세기 국가 경제의 성장동인으로 각인시켰다.
배종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1세대 벤처 CEO들은 벤처가 차입경영에서 벗어나 투자경영하는 새로운 모델을 정립했고, 지식 자산만으로도 기업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이런 모델이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에도 널리 확산되며 각 경제 주체에 큰 영향을 미친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영인상 정립=현재 10년 이상 벤처업계를 이끌고 있는 1세대 벤처 CEO는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 안철수 안연구소 사장, 김형순 로커스 사장,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 등 줄잡아 2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연구원 또는 엔지니어 출신의 비전문 경영인으로 출발해 현장에서 체득한 비즈니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점차 전문화된 경영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및 틈새시장에 대한 적극적이고 민첩한 대응을 통해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한 것 외에 임직원과 주주, 그리고 사회와의 성과 공유를 위한 ‘나눔의 문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지만 큰 기업=1세대 벤처기업인들은 다각도로 세계 시장 진출을 추진, 벤처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표 시장으로 글로벌 시장이라는 것을 부각시켜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벤처기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곧바로 해외 틈새시장 공략을 시작으로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을 준비해온 게 이들 1세대 벤처인이다. 특히 기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과 같은 하청 위주의 접근이 아닌 독자기술 및 제품과 브랜드로 직접 해외 기업과 협상에 나서 국내 기업의 협상력 제고에 기여했다. 이런 결과로 연간 2억달러의 수출고를 올린 휴맥스와 같은 기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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