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바이오테크시대의 쌀

 <윤원창 부국장겸 과학기술부장 wcyoon@etnews.co.kr>

 

 얼룩소가 얼룩송아지를 낳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어떤 경로로 어미소의 얼룩무늬가 새끼에게 전달되는지 신비하기만 하다. 이 비밀을 지난 53년 영국의 젊은 과학자 두 사람이 풀었다. 유전자(DNA)라는 것이 있어서 수영을 배우지 않은 오리새끼를 물로 달려가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하버드대학의 왓슨과 크릭 박사는 “세포 속에 염색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 생명체의 기본 구조일 것”이라고 발표해 56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인류는 유전체(genomics) 지도를 하나하나 판독해 내고 있다.

 우리가 ‘생명공학의 해’로 정한 지난해에는 조물주가 창조한 인체의 설계도를 낱낱이 밝혀낸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됐고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도 만들어졌다. 새해들어선 인간과 생체적으로 가장 닮은 영장류이면서 지적활동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침팬지의 게놈지도가 완성됐다.

 인간 게놈지도 완성은 난치병 치료는 물론 인류가 사상 최초로 유전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제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개가로 받아들여진다. 침팬지 게놈지도 완성도 인간의 게놈과 비교연구를 통해 진화의 신비는 물론 인간의 특성과 면역체계를 규명해 불치병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새해들어 ‘바이오 21세기’를 실감케 하는 소식은 이외로 많다.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형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20번 염색체의 유전자 분석이 이뤄졌고 세포 자살의 지연이 노화와 암의 원인이란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런 속도로 유전자 비밀이 풀려 나가면 머지않아 성격, 지능지수, 선천적 체질과 유전질환 여부 등 개개인의 유전정보를 담은 주민등록증이 발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약 10년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과학자들이 인체의 염기 서열이 밝혀지면 인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고 호언했던 것이 현실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처럼 과학자들이 게놈 판독에 열을 올리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질병치료는 신약 개발이 전제돼야 하는 만큼 게놈 판독은 수익창출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유전자 정보 판독없이 생명현상을 연구하고 바이오산업을 구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전체 정보는 생명과학과 바이오산업의 공통함수이자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바이오테크의 경쟁력은 유전체 정보 확보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인류에게 남은 유전자원의 보고를 누가 먼저 발굴해 산업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산업시대엔 철강이 가장 귀중한 산업적 소재가 됐고 정보통신시대엔 반도체 기술이 핵심이었지만 바이오테크시대의 쌀은 유전체라는 주장이다. 세계 각국이 국가 차원에서 게놈연구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설득력을 갖는다.

 지난해 완료된 국제적인 인간 유전체 지도사업에 우리나라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중한 정보와 기술을 공유할 수 없었고 이것은 바이오 선진국을 지향하는 국내 과학계의 아픈 상처로 오래 남아있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한 것이 다국적 컨소시엄이라지만 미국과 영국을 뺀 나머지 국가는 이름만 걸친 들러리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은 게놈 공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게놈정보의 공개를 천명하고 나섰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연구결과를 이용하는 데 무임승차란 있을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에 이어 생명공학기술마저 미국 등 선진국에 예속될 우려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게놈연구를 하는 국제적 컨소시엄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이번 침팬지 게놈지도 완성은 미국·독일 등 유전체 연구에 대한 노하우나 방대한 기초자료를 보유한 국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생명공학 연구기관이 참여, 공동으로 일궈낸 성과여서 국내 과학기술계에 낭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특히 이것이 정부가 21세기 뉴프런티어 사업으로 야심차게 출범시킨 인간 유전체 연구사업단의 노력 결과란 점을 감안하면 대형 국책 연구사업이 기획, 선정, 관리만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반석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이 바로 ‘선택과 집중’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