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환율 위기 속의 희망

 ◆이윤재 증권금융부장 yjlee@etnews.co.kr

아무래도 21세기 첫해 우리 경제의 대미를 ‘환율’로 장식할 것 같다.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엔화가치가 연일 하락세를 보이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아시아국가의 통화도 동반 약세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중국 위안화마저 평가절하 대열에 동참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지난 97년 위환위기 이후 또다시 통화위기가 불어닥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렇지않아도 국내외 경제환경이 불확실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내년도 경제성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고 기업들의 경영계획 수립도 난항을 겪고 있는 마당에 ‘환율’이란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원엔 환율은 우리나라 기업들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을 더해 주고 있다. 일본경제 상황에 비춰볼 때 엔화절하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이에 따라 엔화에 대한 원화강세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엔저 카드를 동원하는 듯하다. 그동안 재정자금 투입과 저금리 정책 등을 통해 불황타개를 시도했으나 이렇다할 효과를 거두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최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인식돼온 달러당 130엔이 깨진 것도 일본정부의 엔저 용인 태도 때문이다. 이에따라 엔화는 앞으로 달러당 135엔, 심하면 140엔까지도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원화의 움직임은 좀 달랐다. 원화환율은 지난 10월초 달러당 1320원까지 오르다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이달초에는 1260원까지 떨어졌다.

한국경제에 대한 회복론과 함께 국가신용등급의 상향 조정으로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원화가치가 다른 국가의 통화가치에 비해 높게 평가된 것이다. 이후 엔화환율의 급상승과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그리고 외국인주식투자자금의 유출 등으로 원화환율도 엿새째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말과 비교하면 25일 현재 원화는 매매기준율로 달러당 3.4% 절하된데 비해 엔화는 종가기준으로 14.5%나 떨어졌다. 대만과 싱가포르도 각각 종가기준으로 5.9%, 5.0%씩 하락했다. 원화가치가 이웃 경쟁국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환율의 움직임을 좋게 해석하자면 한국경제가 IMF를 조기 졸업한데 이어 경제의 체질이 그만큼 강화됐음을 의미한다. 우리 스스로가 국내경제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외국의 시각이 더 고무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산업구조를 보면 상당부분 이해가 된다. 국제경쟁시장에서 한국은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으로 산업의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특정 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아시아 경쟁국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는 국내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국내외 시장에서 중요한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신사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까닭은 원엔 환율이 국제경쟁시장에서 여과없이 맞닥친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산업정책이 일본을 벤치마킹한 결과이기도 하다. 무역협회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원화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아래 엔화가 달러당 10% 하락할 때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19억달러 마이너스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산업과 경제는 ‘엔저에 울고 엔고에 웃는’ 다람쥐 쳇바퀴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한 두가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과거의 원엔 환율을 살펴보자. 전자제품이 수출효자로 등장한 지난 80년대 후반을 보면 원엔 환율은 100엔당 470원 안팎이었다. 그리고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계속 떨어져 외환위기 후 1000원 이상으로 올라갔다. 바꿔말하면 지금의 상황은 오랫동안 양탄자를 타다가 군용담요로 갈아타는 것에 불과할 뿐 아니라 너무 추위에 약해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80년대 후반의 국내 물가나 임금수준 등을 감안할 때 이러한 비교가 단편적일 수 있지만 우리의 기업체질, 제품경쟁력 등을 다시한번 강화시켜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하다.

 희망적 요소도 있어 보인다. 최근에 우여곡절을 겪고는 있지만 세계경제의 물결이 디지털 환경으로 옮아가는, 거스를 수 없는 이 시점에서 확실히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앞서 있는 분야가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환율문제는 주로 수출제품에 맞춰져 있고 아직 디지털경제의 핵심인 인터넷비즈니스까지로는 그 파장이 크지 않다. 인터넷비즈니스 분야에서의 대일 경쟁우위가 당장의 환율대응책은 못되겠지만 마라토너와 같은 장기레이스에선 한 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새해를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