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교육은...
<사례 하나>
서울 S중학교는 작년 겨울방학에 교단선진화 사업비로 43인치 프로젝션 TV를 구입하면서 교실마다 설치돼 있던 29인치 모니터를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 일단 10대는 특별활동에 필요한 기자재로 활용할 계획이지만 나머지 수십대의 모니터는 대안이 없다. 더욱이 아직 내구연한이 지나지 않아 팔거나 폐기할 수도 없다.
<사례 둘>
서울 N초등학교의 컴퓨터 실습실은 오후 3시만 지나면 커다란 자물쇠로 출입을 통제한다. 교육인프라 구축 지원 자금으로 40여대의 펜티엄Ⅲ PC를 들여놓았지만 하루 2시간의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원을 켜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오늘도 학교 주변 PC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사례 셋>
서울 H초등학교에 배치된 전산보조 공익요원 K씨는 매일 학교 주변 청소만 하고 있다. 학교 전산실 운영과 컴퓨터 관리 등 전산업무 보조가 역할인 K씨가 허드렛일을 하는 이유는 컴퓨터 자판도 다루지 못할 정도의 ‘컴맹’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이 학교 정보부장 교사는 혼자서 130여대의 PC를 혼자 관리하고 있으며 K씨는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범국가적 교육정보화 추진을 목표로 2단계 교육정보화 종합발전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의 현주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정부의 사업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교육정보화 추진이다. 2000년까지 1단계 교육정보화 종합발전 계획이 마무리됐다. 이로 인해 국내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초고속인터넷에 연결됐으며 대부분 펜티엄Ⅲ 이상의 PC 환경을 갖추게 됐다.
작년 6월 발표된 2단계 교육정보화 종합발전 방안에서는 무려 3조2874억4000만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들여 지식기반 정보사회에서의 인재육성을 실현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의 의욕적인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실제 교육 현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장비는 디지털, 인력은 아날로그.’
가까운 초중고등학교에 직접 가보면 수업에 활용되는 각종 첨단 장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빔 프로젝터도 귀했지만 이제는 교실마다 대화면 프로젝션 TV에 초고속인터넷은 기본이다. 서울의 D외고는 아예 칠판과 노트를 없앤 디지털 수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장비와 인력의 심한 불균형이다. 장비는 디지털이지만 인력은 여전히 아날로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첨단 장비를 활용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수업의 질도 떨어진다.
15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서울 N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컴퓨터를 하지 못하면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젊은 교사와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며 “교사들에게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제대로 전수해주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선 학교에 배치된 전산 공익 요원의 질도 형편없다. 정부는 초중고의 정보화 교육을 보조하도록 하기 위해 99년부터 전산보조 공익요원 배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수준이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12월 현재 서울 시내 초중고 1121곳에 689명의 전산보조 공익요원이 근무하고 있지만 이들 중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한 사람은 11%인 76명에 불과하다.
지방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경기도교육청이 배치한 공익요원 164명 가운데 전산 전공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한 실정이다. 대구교육청은 아예 전산보조 공익요원이 없다.
일선 학교의 정보화 교육 담당 교사들은 “공익요원 근무기간 2년 중 6개월 정도를 전산교육에 투입해야 할 형편”이라고 고충을 말했다.
반면 공익요원 1006명 전원을 시설경비 업무에 투입하는 서울시지하철공사에는 전산 전공자가 19명이나 된다. 이들 중에는 모 대학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 휴학생까지 있을 정도다.
이처럼 교육정보화 사업이 실효성 없이 추진된 구조적인 이유는 학교정보화의 필요성에 대한 현장의 요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행정관료들이 정책결정과 집행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육부나 교육청의 관료들부터 일부 학교장들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구입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하드웨어 설비에 관한 한 활용도에 무관하게 거리낌없이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도 교육정보화의 부실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 일선 학교에서 교육정보화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추진할 부서가 없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각종 장비를 구입할 때 학교별 수요량과 기종을 교육청에서 기계적으로 결정해 예산 활용이 비효율 구조를 만드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어떻게 해야하나
선결 과제는 인력 양성.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산 집행의 우선 순위를 정확히 정해야 한다. 1단계 교육정보화 종합발전 계획의 완결로 교육정보화를 위한 인프라는 어느 정도 마련된 셈이다. 그런데 2단계 교육정보화 종합발전 계획에서도 3조2874억4000만원의 예산 가운데 2조2600억원이 교육정보 인프라에 투자되며 교수·학습방법 개선 예산은 고작 2759억원에 불과하다.
일선 교사들은 교육정보화 예산은 인력 양성과 콘텐츠 개발에 일순위로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 지난 98년 6월 학교도서관법 개정으로 11학급 이하의 소규모학급 제외한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올해까지 사서교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사서 교사를 중심으로 정보화 교육을 실시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사서교사는 법정정원의 7%대에 머무르고 있다.
정보화 담당 교사도 태부족이다. 교육청에서는 학교마다 정보화 담당 교사를 만들라고 성화지만 정작 할 만한 교사는 거의 없다. 정보화 교육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교재를 포함한 콘텐츠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콘텐츠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콘텐츠 개발에 열의와 능력이 있는 교사를 발굴해 팀을 조직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이 팀에서는 콘텐츠 개발 이외에 현장 교사들이 축적한 디지털 자료를 모아 보급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화 연수기회를 최대한 다양화하고 에듀넷과 상용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 컴퓨터 활용 능력과 정보화 마인드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교사를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할 여유가 없으면 교내 자체연수 방식도 바람직하다. 학교 내 자체연수는 학교마다 일정한 수준의 컴퓨터 능력을 가진 교사들을 강사진으로 꾸려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준에 따라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 연수 등 중급연수를 통해 정보화 마인드를 더욱 높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문서작성과 통신을 통한 정보 검색, 멀티미디어 자료 활용 능력이다. 따라서 연수 내용이 지나치게 이론적일 필요도 없다.
제도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부나 교육청의 교육정보화 정책 수립 과정에 현장 교사가 참여할 수 있는 장치 마련으로 필요하다면 각급 행정 단위의 정보화 추진 부서의 책임자와 현장 교사로 정보화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운영하는 방안도 모색해보아야 한다.
◆과기교육도 재검토를
교육정보화뿐 아니라 과학기술교육 정책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력 배출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과학재단이 각국의 24세 인구 가운데 이학계 및 공학계 학사학위 취득비율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8.9%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 8.1%, 일본 7.2%, 미국 5.4% 등 선진국도 한국에 비해 뒤지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또 2000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연간 900여명의 이학계 박사와 2000여명의 공학계 박사가 노동시장에 신규로 공급되는 등 풍부한 인력자원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밖으로 드러나는 수치에 비해 실속은 크게 떨어진다. 배출규모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질적인 수준이 떨어지고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실제 필요인력 수요에 부응하지 못해 국가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보기술(IT)·생명기술(BT)·나노기술(NT)·환경기술(ET)·문화기술(CT) 등 이른바 5T는 기존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산업은 선진국과 격차는 있으나 전반적으로 개발 초기단계고 IT인프라 등 개발여건이 비교적 양호한 점 등을 감안하면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분야다. 특히 5개 기술분야 세계시장의 빠른 성장이 전망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국가적인 육성전략이 필요하다.
여러 육성전략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력양성이다. 또 기초과학분야의 인력양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술융합, 과학기술과 산업의 직접적 연계에 맞춰 다학제적 학과, 예를 들면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기술을 묶는 신설학과의 설립과 상호연계성이 요구되는 과학기술분야 학과들간 협력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과학기술인력의 다양한 경력경로를 개발하기 위해 기업내에서 연구활동 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단기 테크노MBA과정 등을 확충해야 한다.
일선 대학교의 경우 교수 채용시 산업체 경력을 인정하는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 비학문적이며 현장위주의 경험을 쌓은 박사배출을 위한 프로그램을 과감히 도입,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학생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공대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체 경력이 필수적인 만큼 현장경험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성의 과학기술분야 진출을 적극 유도하고 여성인력의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시책을 발굴, 추진해야 한다. 현재 이공계 여성박사 배출비율은 9.6%, 석사는 13.6%이지만 국공립대의 여교수 비율은 이학계 6.2%, 공학계 0.7%에 불과하고 과학기술계 출연연의 여성비율은 6.9%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은 국공립 연구기관, 대학교, 정부출연연을 중심으로 여성연구원 채용비율을 2003년까지 10%, 2010년까지는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해외 우수과학기술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인,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연구·교수 요원은 인문사회를 포함, 1500명 정도이나 대부분 1년 미만의 단기에 그치고 있다. 국제적으로 연계·협력해야 하는 사업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해외 우수두뇌를 총괄연구책임자로 연구기관이나 대학에 초청, 주요 전략기술분야의 연구기반을 구축하고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 확보해야 할 것이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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