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과학기술계 명암>(4)출연연 연구과제 대형화러시

 올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의 가장 큰 변화는 ‘돈되는 보따리식’ 연구에서 탈피, 대형연구과제 추진으로 인식을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IMF 이후 출연연들은 생존권이나 마찬가지인 인건비 마련을 위해 연구개발비가 2000만∼3000만원에도 못미치는 과제들을 연구원 1인당 심하게는 10여개씩 끌어안고 연구개발에 매달려왔다.

 연구성과중심제(PBS)라는 제도에 따라 연구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생존을 위한 인건비 확보에 혈안이 됐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에서는 민간기업이 할일을 출연연이 대행하고 있다는 비아냥마저 터져나오는 상황이 연출됐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3년 내 출연연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문제 제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현재 출연연이 갖고 있는 연구개발 성과를 모두 내다 팔고 연구원마다 기업을 위한 보따리연구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3년 내 비전을 가진 연구 결과는 전무할 것이라며 연구원들은 국가 과학기술을 걱정했다.

 이 같은 위기감에 배경을 두고 과학기술계의 추세로 자리잡은 것이 과제의 대형화다. 과학기술계는 공공기술·산업기술·기초기술연구회를 중심으로 출연연의 고유기능 정립에 들어갔고 최근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출연연이 대학 및 기업연구소와 차별화되는 연구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쪽에 의견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KAIST의 나노와 재료소자 등 중장기 원천기술 개발, 생명공학연구원의 유전체 이용기술과 프로테옴 응용기술 개발,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기초과학 연구 인프라 공급기관으로서의 역할 규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네트워크슈퍼컴퓨터(NSC)·차세대 무선LAN기술 및 4세대 이동통신 원천기술·IMT2000용 핵심기술·스케이러블 테라액세스시스템·EAL5급 정보보호시스템·스마TV 등 5대 대형국책과제에 5년간 7000억원 가량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도 슈퍼컴퓨팅 인프라 구축 등 5대 대형과제를 중심으로 내년에만 346억원 가량을 투입하게 되며, 에너지기술연구원도 분산형 발전시스템 기술 등 4대 항목에 111억원을 투여한다.

 이 같은 추세는 기계 분야도 마찬가지다. 기계연도 내년부터 나노생산기계 등 5개 분야로 조직개편을 추진하며 과제 대형화를 위해 고민 중이다.

 그러나 출연연의 고유기능 정립과 과제 대형화 추진을 위해서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이른바 연구 풍토 조성과 연구시스템의 개혁이다.

 ETRI의 경우 대형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IMF 이후 이탈한 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있으나 최근 열린 산업기술이사회는 정부가 제시한 인력충원 가이드라인을 221명이나 넘겼다는 지적과 함께 자연감소할 때까지 충원하지 말도록 경고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자칫 대형과제 추진이 인력조달의 어려움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을 제기하고 있고, 내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자신의 부서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부서장간 눈치보기와 부서원 단속이 강화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지속적인 개혁 추진을 위해 일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으나 과제 대형화 추세를 뒷받침할 요건을 먼저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대형과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산투자도 절실하지만 연구기관의 필요와 특성에 따라 인력충원 등을 자율에 맡기고 제한을 완화하는 등 정부의 과감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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