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희망이 보인다

 ◆김경묵 디지털경제부장 kmkim@etnews.co.kr

희망이 보인다. 좀처럼 수렁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았던 우리 경제에 한줄기 빛이 보인다.

 최근 반짝였던 주가 회복 분위기 때문이 아니다. 내년 경기가 올해의 2배 수준인 4%대 이상으로 전망됐다고 하는 얘기도 아니다.

 주가는 하루에도 몇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널뛰기 시장일 뿐이다. 경제성장률 역시 그때그때 수정이 가능한 전망치일 뿐이다. 이를 망각하고 답답한 마음에 희망을 외친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아직도 캄캄한 한밤중에 혼자 손전등을 들고 나가 새벽이 왔다고 떠드는 꼴이다. 희망의 현장은 그곳이 아니다.

 얼마전 오프라인 최고경영자(CEO)들과 가진 한 조찬모임에서다. 흔히 얘기하는 전통산업의 사장단 40여명이 모인 이 자리의 화두는 유통망관리(SCM)와 e마켓 공동구축 등이었다. 그들은 정보기술(IT)에 익숙한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아닌 CEO들이다. 연령 또한 IT를 접하기 힘들었던 50대가 대부분이다. 늘 그래왔듯이 대충 ‘잘해 봅시다’정도의 결론이 예상되는 모임이라는 얘기다. 선입견은 모임시작 10분도 안돼 기분좋게 깨졌다.

 논의의 수준은 SCM이나 e마켓을 왜 구축해야 하는지의 정도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내지는 현재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노출된 고민들을 나누는 자리였다. 몇몇 분은 이름만 되면 알만한 대기업 사장이었고 나머지 참석자들도 중견기업을 맡고 있는 최고경영자들이다. 그들이 맡고 있는 사업들 대부분은 흔히 사양산업으로 치부돼온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엔 그 ‘사양산업’에 IT라는 성장엔진을 달아 수종산업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생각으로 꽉차 있었다.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회사를 끌어가는 의사결정권자들이다. 그들의 결단은 곧 회사의 방침이고 행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인터넷업체들은 인기잃은 스타처럼 시름에 잠겨 있고 투자가들은 손실걱정으로 인터넷에 돌을 던질 때 기업을 책임지는 이들은 경영툴로서 IT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달초 본지가 23개 업종, 47개 주요 e마켓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희망은 숨쉰다. 조사 결과 20여개 업체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거나 이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전에 없는 경기악화와 만연된 인터넷회의론 속에서 거둔 성적표다. 단순히 영업이익이 발생했다고 흥분하는게 아니다. 47개 e마켓이 거래중인 고객사를 기준으로 할 때 무려 올 한해 3000여개가 넘는 오프라인 기업들이 어떤 식이든 e마켓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는 거다. 이는 전 산업에 걸친 거래 인프라로 B2B의 자리매김을 보여주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계속된다. 최근엔 공공·제조·금융 등 6개업종 210개 기관 및 회사들의 2002년 e비즈니스 투자계획을 조사해봤다. 그 결과 조사대상기업의 57%가 e비즈니스 투자를 늘리고 12%만이 지난해보다 투자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금도 50억원 이상이 46%를 넘어서고 200억원 이상만도 25%에 이른다.

 반면 세계적인 IT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가트너가 미국 기업 1048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2년 IT 투자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약 30%의 기업이 올해 e비즈니스를 포함한 IT투자를 줄이겠다고 했으며 투자를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14%에 불과했다. 나머지 57%의 기업은 2001년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보수적인 견해를 보였다. 물론 미국의 상황과 우리나라를 단순히 데이터만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결과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 어느 기업보다도 e비즈니스를 전략경영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는 손색이 없다.

 희망은 단순히 풍성함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긍적적인 미래를 보는 것이 희망이 지닌 매력이다. 위기론이 횡행하고 닷컴기업의 몰락이 줄을 잇는 한편에서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읽는다. 새벽을 앞당기는 전통산업의 CEO들이 있는 한 우리의 앞날은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