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33/끝)에필로그

 말 그대로 우왕좌왕이었다. 거침없는 성장으로 IMF한파 탈출의 일등공신이었던 국내 정보기술(IT)업계는 올해 사상 초유의 불황에 맞닥뜨리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곤두박질하는 매출과 주가를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고작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힘든 것은 외국 IT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끊임없이 행동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와 달랐다.

 외신은 잇따른 유수 IT기업들의 인력감축과 사업축소 소식으로 도배하다시피했다. 반면 우리 IT기업들은 경기회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하릴없이 시간만 축냈다.

 한계는 곧 드러났다. 국내 간판 IT품목인 반도체는 누적되는 적자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으며 정보통신과 컴퓨터도 극소수업체를 제외하곤 시장퇴출의 위기에 직면했다.

 한반도를 달궜던 벤처붐도 사그라들었다. ‘벤처’라는 단어도 마치 ‘정경유착’이나 ‘돈돌이’와 같은 말로 오해받을 정도다.

 4분기들어 경기회복 신호가 나오고 있으나 이를 체감하는 우리 업체는 극히 드물다. 외국 IT기업들이 이제 매출 회복과 수익성 개선 전망에 다시 활력을 찾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IMF체제가 한국경제의 고질을 일깨워 줬다면 불황은 우리 IT산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들춰냈다.

 ‘핵심기술을 갖지 않고선 더이상 성장할 수 없다’ ‘정책은 있어도 마스터플랜은 없다’ ‘세계표준이 없다’ ‘기업은 살지 몰라도 인재는 죽고 있다’ 등 문제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물론 문제점만 부각된 것은 아니다. 우리 IT산업이 가진 경쟁력도 다시한번 확인됐다.

 CDMA의 성공과 첨단 메모리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양산 등에서 보듯, 우리 IT산업은 양산기술에서 경쟁국의 추격을 불허한다.

 불황탓만 하며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리의 약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강점을 더욱 극대화해야 한다.

 우리 IT산업이 불황을 겪으며 새삼 확인한 것은 이 산업이 우리 사회의 성장에 주춧돌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IT산업이 흔들리면 전자정보산업은 물론 국가경제도 휘청거린다. 불황과 IT기업들의 잇따른 퇴출은 지진과 같은 재앙이 멀지 않았음을 일러주는 신호탄이다.

 우리나라만큼 IT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선진국에선 그저 해당업종에만 국한될 반도체값 폭락이 우리나라에선 경제의 발목을 잡을 정도다.

 높은 의존도와 달리 기술수준과 경쟁력은 높지 않다.

 세계적으로 내로라 할 만한 수준에 오른 분야는 CDMA나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도다. 이들 분야도 중국과 같은 경쟁국의 등장으로 점차 빛이 바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많으나 대책은 없다. 정부 부처는 여전히 IT정책 주도권을 놓고 밥그릇 싸움만 할 뿐, 업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려는 노력은 없다.

 업계도 당장 살 궁리를 찾는 데 바빠 5년 뒤, 10년 뒤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일한 희망인 인재양성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실업예비군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정보통신과 반도체 등의 산업계는 여전히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전자신문이 지난 4월말부터 8개월간 ‘IT산업 재조명’ 시리즈를 연재한 것은 과연 우리 IT산업이 얼마만치 와 있는지, 앞으로 어디까지 가야 할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부족한 게 많았음에도 많은 독자들이 새로운 문제 제기에 성원을 보내왔다. 또 따가운 질책도 많이 받았다. 질책의 상당수는 “그런 문제가 어디 최근 한두해에만 나온 것이냐”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반문은 해묵은 숙제를 되풀이할 정도로 우리 IT산업기반이 취약하고 성장일변도였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국가적인 IT산업전략을 다시 짜자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IT발전은 매우 빠르고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것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민간차원에서 IT에 대한 관심과 추진력이 생겨났다고 봐야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중장기계획을 수립, 체계적인 IT산업 육성에 나서야 합니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한 말이다.

 어떻게 보면 국내 IT산업이 이 정도까지 발전한 것은 민간의 힘이다. 불황으로 인해 그 추진력이 약해졌다. 정부는 힘이 딸린 엔진에 다시 기름을 넣어야 한다.

 건마다 수조원짜리인 투자계획도 그렇지만 민간기업과 개인이 나름대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진짜 기름칠이다.

 이처럼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7개월간 에둘러 왔을지도 모른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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