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개각과 IT부처 통폐합

◆이택 산업전자 부장

 인사철이다. 연말 임원 인사를 단행하는 기업들이야 해마다 한차례씩 홍역을 치르는 일이지만 올해는 개각까지 맞물려 있다. 재계는 재계대로 정부 관료들은 관료들대로 두서너 사람만 모이면 인사 문제로 수군거린다. “이번에 누가 발탁되고 세대교체가 이뤄진다”는 둥, “실력자에 줄을 댄 누구는 어디로 옮긴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기업이건 정부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승진과 보직에 목을 맬 수밖에 없어 이같은 현상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사 문제가 거론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정부나 기업이 모두 ‘올 스톱’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중요한 시기, 혹시 엉뚱한 실수나 튀는 행동으로 공연히 인사권자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조심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납짝 엎드리는’ 분위기가 일상화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시쳇말로 복지부동도 모자라 ‘땅 바닥에 엎드려 눈동자(눈치)만 굴린다’는 복지안동이 남의 일이 아닌 어엿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기업의 인사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그러려니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정부까지 이같은 상황을 되풀이 한다면 심각하게 따져 봐야 한다. 특히 지금은 정권 말기요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까지 사퇴, 국가 경영 주도세력 부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데 대대적인 연말 개각까지 예고돼 관가의 동요폭이 훨씬 크다. 더욱이 인사 민감도로만 따지면 기업인들보다 몇배 높은 관료집단은 개각설이 나오면 아예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관이 바뀔 때마다 실국장이 옮겨올 때마다 전임자의 정책이나 지침과는 또다른 새로운 내용을 요구하기 일쑤여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쪽이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본인의 보직 이동 가능성까지 제기되면 ‘개각설=업무 휴업’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이번 개각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방향이 어느 정도 예상된다는 점이다. 내년 대선을 관리할 중립적 인사의 발탁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이를 위해 현재 당적을 보유하고 있는 정치인 출신들이 모두 물러난다는 원칙이다. 공교롭게도 정치인 장관은 IT관련 부처에 몰려 있다. 장재식 산업자원부, 남궁진 문화광광부, 김영환 과학기술부장관 등이다. 양승택 정보통신부장관만이 비정치인 출신이다. 양 장관은 유임이 점쳐지지만 경제팀 일괄 물갈이가 대세를 이룰 경우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판이니 과천은 물론, 광화문 청사도 개각 바람에 휩쓸려 있다. 고급 공무원일수록 업무는 뒷전인 채 개각 정보 귀동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도 모자라 아예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마저 있다고 한다. 언론이 질타와 견제에 나섰지만 국무총리가 직접 내각에 당부한 사항이니 틀리진 않은 모양이다.

 정부의 IT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개각에 쏟는 관심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이번이 현 정부의 마지막 개각이면서 동시에 정권 교체기마다 현안으로 제기되는 정부부처 통폐합이라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책임질 수장을 맞게 된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사실 IT부처 차원에서는 장관 개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조직의 생사를 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인물을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힘 세고 여야 정치권에 두루 안면을 갖추었으면서도 내부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인사를 나름대로 따져 보고 하마평에 한창이다.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정부 개편은 불가피한데 지금 한가하게 업무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IT관련부처간의 밥 그릇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IT정책에서부터 문화 콘텐츠까지 어느 곳 하나 마찰음이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관료들은 알고 있다. 내년 한 해는 자기 부처의 존재 이유를 알리는 ‘여론전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그래서 기세 싸움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각종 이익집단의 우호세력화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산자부와 정통부는 벌써 ‘IT기본법’과 ‘전자거래기본법’을 앞세워 일합을 겨룬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은 누가 장관이 되건 IT부처 통페합이 어떻게 되건 알 바 아니다. 그저 일년에 몆차례씩 관료들이 흔들리고 일손을 놓는 일이 없어지기만을 바란다. 인사권자가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신명을 바치는 장관이면 족하다. 다만 이런 간단한 명제가 새로운 밀레니엄에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