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강국 일본이 무너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한국과 대만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중이다.
올해 일본의 반도체업체들은 사상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감원, 공장가동 중단, 공장 및 사업부문 매각 등 무거운 처방을 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은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세계 반도체기업의 생산기지로 떠오르면서 반도체 생산량 및 시장규모면에서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중이다.
중국이 미국→일본→한국→대만으로 이어진 ‘반도체 서진(西進)’의 종착점이 되고 있다.
◇침몰하는 일본=히타치는 반도체 경기침체에 관한 대응조치로 전체 근로자의 6%인 2만명을 감원했다. 도시바 역시 전체 직원의 10%인 1만88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올들어 4000명을 감원한 NEC는 내년 1분기까지 300명 이상을 추가 감원키로 했고 전직원의 4%인 1만4700명을 줄이기로 한 후지쯔도 최근 1700명 이상을 다시한번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메이저 업체에서만 올들어 4만명 이상의 실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축소일로에 있는 일본지역내 반도체 산업추이를 고려할 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감원만이 아니다. 전세계 D램 시장점유율 6위 업체인 도시바는 메모리사업 중단은 물론 사업부 매각을 선언했다. 이밖에도 후지쯔가 12개의 생산라인을 9개로 축소하기로 한 데 이어 미국 그레셤 소재 플래시 팹을 통째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며 히타치는 이동전화용 반도체 제조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팔아서 적자를 내느니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계산에서다.
물론 일본은 나름대로 확고한 기술을 갖고 있으며 특수 메모리나 비메모리분야로 옮기려 한다. 하지만 이곳엔 워낙 강자가 많이 도사리고 있어 반도체왕국의 재건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떠오르는 중국=중국의 분위기는 다르다. 시장 상황과 생산 모두 호조다.
지난 상반기 중국의 반도체 수요량은 109억7000만개로 작년 동기대비 8.3% 성장했고 연간 전체로는 250억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세계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 반도체시장만이 플러스 성장했다.
반도체 생산측면에서도 인텔, NEC, 도시바, 히타치, 모토로라, 필립스 등 20여개 대형 반도체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폭증세를 기록하고 있다. TSMC와 같은 대만 업체들도 중국행을 모색중이다.
2000년 현재 중국의 반도체 공장수는 베이징 2개와 상하이 5개 등 총 7개. 조립공장은 20개, 디자인센터는 80개다. 생산에서 설계까지 폭넓다. 물론 중국업체의 기술수준은 낮은 편이나 합작사를 통한 기술전수와 정부의 산업 및 인재육성으로 미뤄 빠른 속도로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시장과 업체가 변수=반도체강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은 세계 반도체산업 판도에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우선 중국시장을 얼마나 점유하느냐에 따라 업체들간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아무리 1위 업체라도 앞으로 중국시장에서 고전하면 수위를 지키기 힘들게 된다.
반면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일류 업체로 급부상하는 업체도 나올 수 있다. 퀄컴도 한국을 거점으로 세계적인 업체로 떠올랐다.
세계 유수의 반도체업체들이 다소 성급하다 할 정도로 중국에 공장을 경쟁적으로 세우는 것은 중국시장을 잡지 않고선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중국업체도 변수다. 정부의 육성정책에 힘입은 탓인지 중국 출신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반도체분야를 전공한다고 한다. 이들과 자국내 반도체업체로부터 양성될 인력까지 가세하면 2010년께엔 상당한 수준의 고급인력과 기술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한국으로선 다행스럽게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비메모리 위주다. 그렇지만 메모리업계 재편과정에서 중국이 이 사업에 뛰어들 여지는 있다. 당장 중국은 하이닉스의 일부 기술을 탐낸다.
앞으로 전개될 세계 반도체산업 빅뱅의 한 가운데 중국이 서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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