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다. IMF사태라는 초유의 경제난국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 국내 중소기업의 역사를 바꿔놓은 인물이 있다.
‘쿠쿠’라는 자체 브랜드로 국내 전기압력밥솥 시장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성광전자의 구자신 회장(62)이 바로 그다.
구 회장은 회사설립 후 지난 20여년간 꼬리표처럼 붙어있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전문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이른바 ‘쿠쿠의 기적’을 일궈냈다.
쿠쿠의 신화는 단지 한 중소기업인의 성공이라는 의미에서 한 발 나아가 국내 중소가전 업계에 또 하나의 좌표를 제시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 중소기업의 성공신화는 ‘이렇게 쓴다’라는 모범답안을 그가 제시해줬기 때문이다. 구 회장이 밥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78년. 구 회장은 “사업초기 이렇게까지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보온밥통 생산을 시작으로 밥솥과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섰다”는 말과 함께 시계바늘을 지난 97년으로 돌렸다. 한국경제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97년 11월이후 성광전자의 매출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성광전자의 밥솥을 공급받아 판매하던 국내 최대 가전회사가 소형가전 사업을 대폭 축소하면서 주문물량이 줄어 매출 또한 매달 10%씩 감소했다. 이로 인해 당시 성광전자의 공장가동률은 50%를 밑돌면서 구 회장은 회사설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구 회장은 “불가피하게 쿠쿠라는 독자브랜드로 생사의 기로에 선 회사의 돌파구를 찾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쿠쿠 브랜드의 독자적인 판매는 밥솥시장의 경쟁심화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원청업체의 거절로 인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어려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난 98년 5월부터 쿠쿠라는 독자브랜드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쿠쿠(CUCKOO) 브랜드는 120여 가지의 공모이름중 선정된 브랜드명으로 만 3년6개월만에 중소기업 브랜드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기록하고 있다. 쿠쿠를 자사브랜드로 선정한 이유도 재미있다. “쿠쿠는 영어로 뻐꾸기를 뜻합니다. 당시 최대 히트상품이었던 뻐꾸기시계의 뻐꾸기를 독자브랜드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쿠쿠를 채택키로 했습니다. 당시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뻐꾸기 시계의 정확성·정직함을 기업이미지 향상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이어 “쿠쿠는 또한 맛있는 요리(Cook)와 달콤한 쿠키를 연상시켜 줘 주방가전제품의 이미지에도 적합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브랜드네이밍 작업을 마친 구 회장은 IMF라는 특수상황이던 98년 11월 쿠쿠라는 브랜드의 파워를 키우기 위해 대대적인 TV광고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대기업들이 광고비중을 줄여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쿠쿠의 브랜드인지도는 단시간에 급속히 높아졌으며 매출도 급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같은 성공에 힘입어 구 회장은 98년이후 ‘광고에 대한 지출은 투자’라는 확신을 갖고 요즘에도 공격적인 광고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쿠쿠라는 브랜드를 채용하면서 구 회장은 정직·정확을 표방하는 ‘정도경영’을 펼쳐왔다. 과거 구 회장은 양산에 위치한 현 공장부근의 부동산에 대한 투자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했으며 70∼80년대 고도성장기에도 차입경영을 자제하고 내실위주의 경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IMF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에 성광전자는 은행 대출금보다 예금액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정도경영은 현금거래를 고집하며 기존 유통시스템이 요구하는 외상거래·무자료거래 관행을 타파하는 모험에서도 발휘됐다. “그 당시 나는 거친 바다를 한 조각 작은 배에 의지해 헤쳐나가는 헤밍웨이 소설속 인물이었다”며 어려웠던 상황을 술회했다. “제품의 품질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소비자들의 생활패턴과 요구사항을 전기압력밥솥 개발에 반영하고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AS 등 사후처리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성광전자는 현재 전국 50여개의 서비스센터와 100여개의 서비스 지정점을 전산 네트워크를 활용, 통합화하는 작업을 실현해가고 있다. 대리점·특약점과의 끈끈한 신뢰구축도 오늘의 쿠쿠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2억5800만원의 비용을 들여 모 할인점에서 자사제품을 전량 회수한 것은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곤 한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쿠쿠는 현재 전기압력밥솥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40%이상을 기록하며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구 회장은 “1위가 되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며 “현재 밥솥업계에서 차지하는 쿠쿠의 위치는 눈속임과 거짓됨이 없는 쿠쿠의 경영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로 받아들이겠다”고 겸손과 자신감을 동시에 나타냈다. 이같이 품질을 중시하는 구 회장의 정도경영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국내 경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성광전자의 매출이 전년대비 25%가량 성장한 1100억원대에 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소박한 꿈이 실현됐으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장성이 희박한 신규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는 지양하되 종합소형가전업체로의 도약을 위한 단계적인 성장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을 방침입니다.”
구 회장은 정도경영과 함께 이른바 ‘분수에 맞는 경영·돌다리경영’을 기업운용의 키워드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그의 경영스타일은 모험보다는 안정적 성장에 바탕한다. 이 때문에 간혹 직원들로부터 다소 보수적이라는 말도 듣곤한다고 귀띔한다. 그는 “최고경영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은 회사의 역량을 정확히 직시하고 이에 맞는 목표와 좌표를 그려나가는 것”이라며 향후 펼칠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큰 돌 사이에는 작은 돌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존재합니다. 내년에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수출모델을 개발, 현재 전체 매출의 10%에 못미치는 수출비중을 50%로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우선 지난 97년 50만달러를 투자해 시도하다 IMF직격탄을 맞으면서 유보했던 중국현지 생산기지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현재 성광전자는 총 200만달러의 투자비를 책정하고 중국의 톈진과 칭다오 등지에 공장부지를 물색중에 있다. 그는 올해말까지 입지선정 작업을 마무리짖고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염가형 밥솥을 현지에서 생산, 직수출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쿠쿠의 성공신화가 한류열풍과 중국의 WTO가입을 계기로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만리장성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41년 2월생 △65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74년 성광통상 창립 전무이사 △77년 삼신정밀공업 대표 △78년 성광전자 창립 대표 △87년 성광화학 대표 △99년 쿠쿠 대표 △2000년 양산 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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