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도 녹슬지 않는 경영의 진리가 있다.’
대부분 디지털 경영하면 뚜렷한 목표의식과 비전 공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직관리, 효율적인 성과배분과 인사관리, 지속적인 리스크 및 변화관리 등 선진적인 경영기법을 떠올리지만 의외로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깃털처럼 가벼워보이는 작은 정성과 감동일 때가 있다.
기업은 명령어가 잘 입력된 기계들의 조합이 아닌, 때때로 좌충우돌하고 슬럼프를 겪으며 희노애락을 느끼는 사람들로 이뤄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이 작거나 업무가 복잡하지 않은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의 경우는 체계적인 시스템보다는 ‘인간적인 유대’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제 창업 1년째를 맞는 벤처기업 I사의 L사장은 지난 시기를 회고하면서 너무 이상적인 모델로 회사를 끌고가려 했구나하는 반성을 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학을 졸업하고 체계적인 경영이론과 조직운영이론으로 무장한 L사장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스템화하는 데 주력했다. 명확한 보고체계, 그룹웨어를 통한 의견공유 및 결재처리, 성과측정 모델, 회사비전에 대한 도식화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공허하다고 느낀다. 10명 남짓한 소규모 조직에서는 지나친 시스템화가 오히려 개인의 창의성이나 자율성을 억제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운영 시스템은 갖췄는데도 조직의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안난다고 생각되면 다음과 같은 인간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직원들을 다독거려보라.
◇직원 가족은 최고의 고객이다=‘가족을 감동시키면 직원들이 용기백배한다.’ 이전에는 가장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절대미덕으로 알고 나머지 가족들이 모든 것을 감내했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가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배우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하거나 시간을 무작정 소요할 수는 없다. 이럴 때 현명한 경영자는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펜타시스템은 매년 한번 패밀리데이를 개최하면서 가족 모두가 회사의 주인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도 임직원 가족 500여명을 용인 에버랜드에 초청해 임원인사, 사업내용 소개 등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IBM도 지난 9월 에버랜드에서 4000여명의 임직원 및 가족들과 함께 패밀리데이 행사를 가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웨어밸리는 지난 추석에 이어 올해 말에도 직원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송년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추석 가족모임을 통해 가족들은 가장을 이해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됐으며 직원들은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약간이라도 덜고 업무에 보다 충실하게 됐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MiB테크놀로지 역시 연말 가족들을 초청해 송년모임을 갖고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직원 건강이 회사 경쟁력이다=‘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벤처기업의 경우 밤샘근무가 마치 미덕인 것처럼 인식돼 있다. 도전정신과 일에 대한 열정이야 높이 평가하겠지만 장기전을 생각하는 경영자라면 직원 건강을 소홀히 보지 않는다. 얼마전 모 사장은 ‘건강관리도 비즈니스 경쟁력’이라는 칼럼에서 다국적 기업의 임원들은 담배를 거의 피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래 살아남는 조직과 인력은 그만큼 건강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최근들어 국내 기업들도 1년에 한번하는 정기검진 이외에도 다양한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아이티플러스는 1년에 2회의 체육대회를 통해 직원화합을 꾀하고 건강의 중요성도 서로 일깨운다. 한맥인포텍은 정기검진과 4대 보험 이외에도 본인은 물론 배우자 몫까지 소정의 체력단련비를 지급하고 있다. 펜타시스템은 총무·인사과에서 형식적인 정기검진 이외의 실질적인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다시 마련하고 있다. 자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지하에 있는 헬스클럽에 갈 것을 권유하거나 점심시간에 여의도공원에서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권하고 있다.
◇예의를 아는 조직이 오래간다=‘예의는 인륜의 기본이다.’ 디지털 경영, 벤처경영에서는 자유분방함이 줄곧 강조되지만 이 속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사이의 예절이 있다. 기본적인 예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일을 하면서도 서로 믿지 못하게 되고 밀착된 협업이 이뤄지지 못한다.
한국컴퓨터통신의 강태헌 사장은 조직에서 필요한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예의로 꼽고 있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의견개진과 진취적인 업무수행이 이뤄지더라도 사람간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 조직의 생명력은 길지 않다는 지론이다.
모 벤처기업 C사장의 경우 능력있다고 소문난 한 컨설턴트를 뽑았다가 다른 직원들과는 등을 돌릴뻔한 경험을 했다. 능력은 있는데 혼자 잘났다고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서 직원들로부터 집단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 결국 그 컨설턴트는 나갔지만 상호 예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팀워크에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C사장은 절감했다.
특히 처음부터 이같은 문화를 심어놓지 않으면 조직이 커질수록 인간적인 유대가 약해져 관절염에 걸린 환자처럼 조직이 삐걱거리게 된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인터뷰-장종준 펜타시스템테크놀러지 사장
“근본으로 돌아가면 가장 중요한 게 보입니다. 업무 때문에 바쁘다보면 자신은 물론 주변 동료, 가족의 존재를 깜빡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얼마나 소중한 것들입니까. 진정한 디지털 경영은 이같은 근본이 바탕이 돼 있는 데서만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펜타시스템테크놀러지 장종준 사장은 특히 벤처기업에서 나타나기 쉬운 오류는 자신의 몸을 혹사하고 가족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자신과 가족 모두 행복하고 건강해야만 조직도 살고 기업도 산다는 것이다.
또 능력과 성과 위주로 조직이 운영되다보면 윤활유없는 기계처럼 기업이 잘 돌아가지 않는데 이럴 때는 직원간 화합과 기본적인 예의가 가장 힘이 된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한 업무분위기도 좋지만 “내 일만 잘하면 되지 뭐” “내가 잘나서 잘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전체 팀워크가 깨져 결국 개인의 역량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장 사장은 92년 펜타시스템에 입사, 10년을 이 회사에서 보냈다. 대리부터 시작해 올초 내부승진을 통해 사장직에 오른 만큼 말단부터 임원급까지의 정서와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가족을 위한 행사, 직원 화합을 위한 호프데이와 같은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 잔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자신이 이 모든 과정을 몸소 거쳐왔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끝으로 “꼭 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런 기본에 충실하다보면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며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할 것 없이 이같은 부분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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