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중반부터 IT분야 학술교류를 이어온 남북한은 지난해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IT교류협력사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남한의 자본·상용화 노하우와 북한의 기초과학 기술·인력이 힘을 합하는 IT교류협력사업은 가장 현실적이며 생존적인 접근방법이라는 인식속에 여타 분야에 비해 가장 많은 탄력을 받고 있다.
이처럼 남북 IT교류협력사업이 일정부문 결실을 맺고 있는데는 오래전부터 남북한 정보통신기술 교류의 물꼬를 트고 그 기반을 다져온 숨은 공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보기술은 첨단기술산업으로서 경제협력과 학술교류를 병행해야 하고 학술교류는 그 특성상 계속성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란 점에서, 남북 학자들의 IT 학술교류는 현재 꽃봉오리를 피어낸 남북 IT협력사업의 자양분이 됐다.
남북 IT교류의 역사는 10년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 90년대 초부터 싹을 틔웠다. 남북간 본격적인 정보통신 교류는 94년 ‘제1차 코리안 정보처리 국제학술회의(ICCKL)’를 시발점으로 하고 있다. 남북한 언어와 정보기술 교류분야에서 최장·최다회를 기록한 이 학술회의는 지금까지 남북공동의 컴퓨터자판배치안, 남북 한글 자모순 공동안, 남북공용 컴퓨터용어사전 등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냈다.
당시 남북 IT학술교류는 한국정보과학회 소속 학자들과 국어학분야 학자들이 모여 만든 국어정보학회의 회원을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 그러다가 지난 9월 태동한 대북 IT전문가들의 모임인 ‘통일IT포럼’은 남북 IT교류에 뜻을 둔 학자들을 모두 아우르는 조직체로 발돋움했다. 통일IT포럼은 매달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남북IT교류의 현안과 과제를 짚은 뒤 이를 토론집과 통일칼럼의 형태로 담아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북 IT교류의 불을 댕긴 인물로는 박찬모 포항공과대 대학원장(67·통일IT포럼 회장)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남북 정보기술 교류협력의 밀알’로 불리는 박 원장은 남북 IT협력사업의 초석을 다져 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 원장이 남북 IT교류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11년전 중국에서 북한 과학자들을 만나 남북간 정보격차를 확인하면서부터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대 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정보과학회 회장을 역임한 박 원장은 IT교류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시절부터 남북 학자들이 참여하는 컴퓨터학술모임을 구상하게 됐다. 그 뒤 각고의 노력끝에 마침내 94년 중국 옌볜에서 제1차 코리안 컴퓨터처리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대회는 지난 2월 열린 5차대회까지 지속해서 열리고 있다. 박 원장이 씨앗을 뿌린 데 따른 결실이었다.
박 원장이 지난해 9월 태동한 통일IT포럼의 초대 회장직을 맡게 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4차례에 걸쳐 북한 평양을 방문한 박 원장은 올해 남북간 정보기술 도서교류를 성사시킨 데 이어 지난 5월 국내 대학 중에서는 처음으로 포항공대와 북한의 대표적인 정보기술 연구개발기관인 평양정보쎈터간의 정보과학기술 공동연구협력에 관한 계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박 원장은 “4년뒤 포항공대에서 은퇴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의 대학에 가서 1년쯤 강의를 하는 게 희망”이라고 할 정도로 남북 IT교류가 풍성한 결실을 맺어가도록 일조하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박 원장과 더불어 진용옥 경희대 정보통신대학원장(59·국어정보학회장)은 민간차원에서 남북한 언어·정보기술 교류를 추진해온 대표적인 학자로 지목받는다.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자통신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진 교수는 한글처리문제가 통일시대 정보기술 각 분야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판단에 따라 95년부터 남북의 국어학자와 컴퓨터학자들이 해마다 벌이고 있는 ‘코리안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의 남한측 단장을 맡아오고 있다.
지난 2월 제5차 코리안 정보처리 국제학술회의에서 남북간 컴퓨터 자판배열과 한글자모순서, 정보기술용어 등에 대한 한민족 공동안이 마련되는 과정에서도 그의 숨은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90년대 국내 통신정책 흐름을 이끌어 오기도 한 진 교수는 “북의 김책공업종합대학 정보통신학부 교환교수가 되고 싶고 통일 때까지 남북 정보통신 교류에 대한 연구를 내 평생의 과제로 삼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남북 IT교류에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남북간 컴퓨터 코드·자모순 공동안 마련에 있어 94년 제1차 코리안 정보처리 학술회의의 남한측 단장을 맡았던 서정수 국어정보학회 명예회장(69·현 한양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서 교수는 요즘도 남북간 정보처리 표준화작업에 참여하는 등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남북간 정보기술용어 표준화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데는 최기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46·KAIST 전문용어언어공학연구센터 소장)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언어학과 전산학의 접목에 힘써온 최 교수는 그동안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어 정보처리 기술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
90년대 중반부터 코리안 정보처리 국제학술회의 용어분과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최 교수는 북한의 대표적인 IT전문가인 리수락 교육성 프로그람교육쎈터 소장과 호흡을 맞춰 현재 우리말 용어와 해설을 담은 ‘국제표준 정보기술용어사전’ 2판 준비에 여념이 없다.
최 교수는 또 지난달 남한 정보처리·언어 전문가들이 남북간 우리글 정보처리 표준화 회의에 대한 남한내의 대표성을 확고히 하고 남한내 민관 의견을 모으기 위한 이른바 ‘남북 언어정보처리 표준화 조직’ 준비위원장에 선임돼 서정수 교수와 진용옥 교수에 이어 ‘남북 언어정보처리 표준화 2세대’의 중심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북간 컴퓨터 한글자판 통일안 분야에서는 정희성 선문대 컴퓨터정보공학부 교수(55)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긴키대에서 학·석사과정을 마치고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정 교수는 남북의 컴퓨터 한글자판을 자소배치안·단별점유율·손가락별 담당비율로 나눠 면밀히 연구·검토, 96년 중국 옌벤에서 열린 제3회 우리말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를 거쳐 컴퓨터 한글자판 통일안 ‘하나로 2000(가칭)’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정 교수는 “‘하나로 2000’은 남북이 공동개발한 컴퓨터 한글자판이라는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남북교류와 동질성 회복을 위한 첫 단계”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글코드분야에서는 변정용 동국대 컴퓨터정보통신학부 교수(45)가 남북간 통일코드 제정을 위해 매진해온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동국대에서 전자계산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정보과학회내 데이터베이스·한국어정보처리 연구회원으로 활동해온 변 교수는 92년 서울 국제표준화기구회의에서 다국어문자코드(ISO 10646)상의 한글코드체계로 채택된 이른바 ‘정음형’ 한글코드를 처음 제안하기도 했다. 변 교수가 제안했던 ‘정음형’은 뒤에 ‘자소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ISO 10646상에서는 공식적으로 ‘Hangul Jamo’로 표기돼 있다.
통일IT포럼 기술표준분과 위원장으로 활동중인 변 교수는 앞으로 남북간에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이 가능하려면 정보교환의 기초가 되는 문자코드 표준의 제정이 마련돼야 하며, 이를 위해 통일코드 제정위원회 구성이 필요함을 주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경석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49) 역시 변정용 교수와 더불어 90년대초부터 한글코드의 남북통일을 위한 연구활동에 정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90년대초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 전산과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중 중국내 조선족 출신의 언어·정보처리분야 교수 및 북한 학자들과 교류를 터온 것을 계기로 94년 1회 코리안 정보처리국제학술회의때부터 지속적으로 남쪽 대표로 활동해 오고 있다. 현재 기술표준원 산하 문자코드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해마다 두차례씩 국제표준화기구에 참석해 북한측 코드 전문가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30년 넘게 출판과 컴퓨터 분야에 몸담아온 이기성 계원조형예술대학 출판디자인과 교수(55·사이버출판대학장 겸 한국전자출판연구회장)도 96년 중국에서 열린 코리안정보처리학술대회에 북한측 요청으로 참석할 정도로 한글코드분야에서는 북측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학자다. 이 교수는 최근 북한으로부터 전자출판에 관한 다수의 논문·저서 기증을 요청받고 이를 전해주기도 했다.
옛 한글분야 대표적 전문가인 홍윤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60)도 국어 정보처리의 남북표준을 깊이 연구해 오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21세기 세종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홍 교수는 어문학자 중에서도 국어정보화에 관심을 가진 전문가 중 대표적인 학자로 꼽힌다. 홍 교수는 지난 2월 중국 옌벤에서 열린 제5차 코리안정보처리국제학술회의에서 남북공동 컴퓨터 자판에 옛 한글을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등 학문의 깊이와 전문성에서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IT벤처인큐베이터협회(KITIA)의 초대회장으로 벤처인큐베이션분야 전문가인 안준모 건국대 경영정보학과 교수(42)는 지난 2월 통일IT포럼 회원 자격으로 북한 평양정보쎈터를 방문해 IT도서 교류 및 학술 교류를 성사시키는 등 남북 IT교류에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의 이태섭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남북간 IT교류 및 경협 문제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정보통신정책 박사 출신의 김유향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남북 정보통신 실태와 교류 방안에 대한 연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밖에 통일IT포럼 회원으로서 남북 IT학술 교류를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로는 김상택 이화여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교수를 비롯해 이종철 서경대 교수, 김광주 경일대 교수, 김길조 중앙대 교수, 김동환 고려대 교수, 김성태 성균관대 교수, 김성혁 숙명여대 교수, 김현주 명지전문대 교수, 이남용 컴퓨터학부 교수, 윤영민 한양대 교수, 유황빈 광운대 교수, 옥철영 울산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송철호 서울시립대 지진방재연구소 실장, 손연기 숭실대 교수, 정일 목포대 중문과 교수, 최흥석 고려대 교수, 최연성 군산대 교수 등이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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