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조형예술대학 이기성 교수

 의왕시 모락산 기슭에 자리잡은 한 대학 연구실의 주인은 전자출판 분야에 반평생 넘게 몸을 바쳐왔다. 이기성 계원조형예술대학 출판디자인과 교수(55)가 그 주인공.

 서울대 1학년 때부터 가업인 출판사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이 교수는 지난 64년 6·3계엄령 사태가 발생하고 대학이 휴교되자 낮에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취미인 라디오 조립하기, 전축·무전기 만들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컴퓨터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컴퓨터를 사용하는 전자출판 분야에 평생 몸담게 됐다.

 그는 한글 출판분야에 필요한 이론과 기술을 얻기 위해 최근 늦깎이로 컴퓨터 공부(단국대 박사과정 수료)와 도자기 활자 공부(경기대 재료공학 박사)도 병행할 정도로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 입문서적부터 전자출판 전문서적을 아우르는 80여권의 책과 논문을 써냈다.

 사이버출판대학장이기도 한 이 교수는 얼마전 북한으로부터 뜻밖의 요청을 받았다. 북측 IT연구개발기관이 구체적인 책 제목을 적어 이 교수의 저서 기증을 부탁해 온 것.

 “북한에서 요청한 도서를 볼 때 아날로그 출판용으로는 한글의 글꼴과 활자에 대해, 디지털 출판용으로는 전자출판과 전자출판용 한글 코드 및 폰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최근 북측이 요청한 저서를 흔쾌히 보내줬다.

 30년 넘게 출판과 컴퓨터에 몸담아 온 이 교수는 컴퓨터용 한글인 한글코드에 누구 못지 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지난 96년 중국에서 만난 북한 학자가 도스(DOS) 운용체계에서 1만1172자를 구현하고 있다고 자랑했는데, 남한 학자는 남한의 표준코드가 2350자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 아주 창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행정전산망·인터넷 등에서 현대 한글 1만1172자의 20% 정도인 2350자만 사용하면서 한글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는 현대 한글과 옛 한글까지 표현해낼 수 있는 한글 코드를 인터넷 등 모든 정보단말기에 적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예컨대 e북은 단말기의 외형도 중요하지만, e북을 읽을 때 한글이 2350자만 보이느냐, 아니면 한글 1만1172자가 다 화면에 보이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 교수는 학자로서의 소박한 꿈을 품고 있다. “정신 없이 지내다보니 교수 정년이 이제 8년 남았습니다. 정년까지 1년에 2편씩의 논문을 쓸 작정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남기고 가는 것은 책과 논문이라고 말하는 이 교수의 성과물들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글=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사진=이상학기자 lees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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