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
한국 경제에 잇따라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미래를 담보하는 기업의 설비투자는 11개월 연속 줄어들고 제조업 생산능력은 제자리걸음이다. 수출은 지난 3월 이후 곤두박질치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경영실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했다고 축배를 든 것이 엊그제인데 요즘 발표되는 주요 경제지표를 보면 한결같이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98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경고등을 울리고 있어 걱정이다.
통계청이 엊그제 발표한 ‘9월중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가파르게 위축되고 있는 경제의 실상을 그대로 방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달(-19.4%)보다 감소폭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유선통신기기·기계장비·운송장비 업종의 투자 위축으로 인해 지난해 같은 달보다 6.1% 줄어드는 등 11개월째 설비투자가 뒷걸음질치고 있다. 외환위기 기간이었던 97년 7월부터 98년 12월까지의 18개월 연속 감소 이후 최장기간에 걸친 투자감소다.
그뿐 아니라 3분기 설비투자 증감률(-12.2%)이 환란의 직격탄을 맞은 지난 98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두자릿수 감소했고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도 지난해 9월에 비해 2.1% 증가하는데 그쳤다. 혹시 제조업의 위기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업들의 설비투자 위축이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불황 국면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극도로 위축된 우리 기업들의 설비투자 회복시점을 예측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지난 8월 산업은행이 국내 150대 주요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발표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 나빠진 것 같다. 상반기 투자진행 상황 및 투자계획 변경 내용에 나타났던 당초 계획 대비 설비투자 축소계획(7.2%)보다 더욱 악화된 것 같다. 경기회복 지연, 상반기 영업실적 부진, 구조조정 지연, 금융시장 불안 재발 우려 등 경영여건 악화에 대비, 유동성 확보에 치중하면서 신·증설 투자를 유보하는 등 설비투자를 당초계획보다 7.2% 줄일 정도로 여건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는 업체가 삼성전자다. 연초 계획했던 투자규모를 이미 두 차례나 축소했던 삼성전자는 또다시 4000억원을 축소하는 등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를 연초계획보다 2조6000여억원 줄였다.
이러한 상황은 내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507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발표한 ‘심각한 설비투자 부진과 긴급 대책’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보다 투자를 줄이거나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이 69%나 된다고 한다. 경기 둔화에 따른 시장 침체, 안정성을 선호하는 경영방식 확산, 기업의 단기 실적 강조,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로 설비투자를 꺼리는 등 설비투자 위축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설비투자 축소 움직임은 삼성·LG·SK 등 주요 그룹의 내년도 경영기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불요불급한 투자를 뒤로 미루는 등 현금 중시, 수익성 위주의 긴축 경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핵심 업종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는 지속하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설비투자는 가급적 줄이는 등 내실 경영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것이다.
추락하는 국내 경기를 되살리고 급감하고 있는 설비투자를 대폭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물론 출자한도 초과분에 대한 벌칙을 없애는 대신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개선키로 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보다는 대폭적인 조세환급과 설비투자에 대한 감가상각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이미 GDP 1%(1000억달러 내외)규모의 경기부양 대책을 추진중이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시적인 조세감면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 자금지원 확충과 산업기반기금의 지원금리 인하를 통해 설비투자를 촉진하고 내년도 기금의 조기 집행 등도 심중히 검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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