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시놉시스 파문`

 퀄컴의 CDMA로열티 사태가 채 진정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세계 반도체설계자동화(EDA) 툴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시놉시스가 한국시장에서의 전근대적인 EDA툴 사용관행을 바꾸겠다며 불법복제 단속과 라이선스료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 반도체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례는 퀄컴의 행보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부 기술 독점 업체가 이를 무기로 한국 업체들에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것으로 풀이돼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세계 EDA 합성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시놉시스는 최근 자사의 툴을 사용하고 있는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업체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연구기관에 공문을 보내 ‘한국의 관행을 인정해 그간 최소화시켰던 유지·보수 라이선스비를 이달말까지 3배로 인상하는 내용의 재계약을 맺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중소 반도체설계업체 지원사업을 맡고 있는 정통부 산하 IT SoC센터에는 연구개발 목적에서 벗어난 개별 업체들에 대한 공용 EDA툴 지원은 저작권 침해라며 전면 중단해줄 것도 통보했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업체들과 연구기관은 시놉시스가 그동안의 계약관계를 무시하고 급작스레 라이선스 비용 인상과 불법 사용 운운하고 나선 것은 시장독점력을 내세워 한국고객을 압박하려는 처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일부 중소업체들은 시놉시스 불매 운동을 벌이자며 IT SoC센터를 주축으로 세력결집에 나섰고, 삼성전자에 EDA툴 공급을 맡아왔던 삼성SDS는 시놉시스와의 제휴관계를 끊고 다른 공급업체를 찾아 나서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도 구매액이 큰 만큼 라이선스 비용 인상에 따른 원가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ETRI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백억원에 달하는 EDA툴을 시놉시스로부터 구입해왔는데 유지·보수비용을 갑자기 3배로 올려달라는 것은 아무리 본사의 지침이라고 해도 상식밖의 일”이라면서 “기존 계약을 전면 부인하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SDS 한 관계자는 “오늘날 시놉시스가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삼성전자를 비롯, 국내 업체 및 연구기관들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뒤늦게 국제 관행을 들고 나와 국내 업체들을 압박한다면 더이상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놉시스측은 “라이선스 비용 인상과 불법복제 문제는 별개지만 한국시장이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부가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내 EDA 계약관행을 현실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놉시스는 CEO를 맡고 있는 아드 드 지우스 박사가 반도체설계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합성(신서시스)툴을 개발, 국내외 반도체업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급성장해왔으며 지난해 약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에는 94년 지사설립을 통해 공식 진출했고 연간 1500만∼2000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한국시장에서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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