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한 법령 제·개정 작업이 잇따르면서 법안 취지와 성격이 유사한 법률들이 각기 다른 상임위원회를 거쳐 제·개정될 전망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같은 현상은 관계부처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아 국회와 행정부가 실적을 위한 한건주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기존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하 문산법)’을 골격으로 한 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방안을 마련중이다. 이를 위해 관련 공청회 등을 마친 이 의원측은 이를 곧 문화관광위원회를 통해 이달 정기국회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범부처 차원의 디지털콘텐츠 산업육성을 위한 ‘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 법률안(이하 디콘법)’의 제정을 추진중이다. 정 의원측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및 본회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에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제·개정안은 상당 부분의 조항이 중복되고 있을 뿐 아니라 법안 취지도 유사해 범부처 차원의 디지털콘텐츠 육성체계를 완성하겠다는 당초의 입법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그동안 잠복해 온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의 업무중복 문제를 또다시 재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디콘법은 온라인 콘텐츠 육성법=디콘법안에 따르면 디지털콘텐츠는 정보통신망에서 사용하는 자료 또는 정보이며 정통부는 이를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디콘법안에는 정확히 표현돼 있지 않지만 산업계의 개념으로 본다면 온라인 콘텐츠만을 육성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원소스 멀트유즈’나 온·오프라인의 통합추세 등을 감안할 때 디콘법안식의 온라인 콘텐츠 구별이 산업계에서도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러나 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디콘법’은 오프라인 디지털 콘텐츠, 아날로그 콘텐츠 등은 육성 대상에서 제외된다. 디콘법은 온라인 콘텐츠가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형태일 뿐 본래의 특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통부 입장에서 디지털콘텐츠의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스스로 영역을 좁혀 디지털콘텐츠산업 전반에 대한 육성이라는 입법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디콘법은 온라인콘텐츠육성법으로 바꾸는 편이 현실적이다.
◇문산법이 디콘법의 상위법=‘문산법’ 개정안은 육성 대상을 콘텐츠, 디지털콘텐츠, 멀티미디어콘텐츠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거 ‘문산법’이 아날로그 콘텐츠에 국한됐다면 개정안은 그 영역을 디지털 콘텐츠까지 확대하고 있다. 더욱이 ‘문산법’ 개정안은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이라는 범위에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온라인 콘텐츠를 포함시키고 있다. 물론 ‘문산법’은 실제 지원 대상을 문화와 관련된 콘텐츠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같은 구별이 산업계에 얼마나 제대로 투영될지는 업계마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육성 대상의 범위로만 보면 ‘문산법’ 개정안이 ‘디콘법’의 상위법이나 다름없다.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콘텐츠 육성체계를 만들기 위해 제정되는 ‘디콘법’이 ‘문산법’의 하위법령으로 전락케 되는 것이다.
◇모양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디콘법’과 ‘문산법’ 개정안은 지원 대상만 다를 뿐 실제 육성체계나 방법은 묘하게도 일치한다. ‘디콘법’은 산업육성을 위해 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금확보를 위해 정보화촉진자금 등을 이용해 디지털콘텐츠기술진흥기금을 마련하고 이 기금의 운영 및 지원을 위해 한국디지털콘텐츠기술진흥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산법’ 역시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문화산업발전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문화산업진흥기금 활용 및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을 산하단체로 명시하고 있다. 위원회, 기금, 진흥원 등으로 이어지는 지원체계가 동일하다. 이들 위원회와 진흥원 등이 실제로 하는 일과 기금의 용도는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원론과 각론이 상충된다=‘디콘법’은 디지털콘텐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위원회를 두기로 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육성책을 마련하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원론과 달리 각론에서는 정통부가 모든 일을 맡도록 하고 있다. 또 ‘디콘법’은 디지털콘텐츠기술진흥위원회, 디지털콘텐츠기술진흥기금 등을 통해 디지털콘텐츠기술을 개발하겠다지만 실제 업무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술개발, 인력양성, 창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문산법’도 비슷하다.
산업계는 지금이라도 2개의 법률을 나란히 놓고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기형적인 법안을 놓고 소비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원점으로 돌아가 판을 새롭게 짜는 것이 더 쉽고 효과적일 것이란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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