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전력·정유 등 국가기간시설이 천재지변에 휩싸인다면 해당 전산시스템은 보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까. 물리적인 설비와 인명만큼이나 중요한 전산데이터는 현재로선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최근 들어 기업의 중요 데이터나 이를 축적·관리하는 전산시스템 자산가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는 있지만 아웃소싱 위탁업체와 고객사간 모호간 계약관행과 관리의 당사자인 전산 아웃소싱 업계의 사후대책 마인드 부족으로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기는 일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외부 전문업체에 자사 전산시스템을 위탁운영하는 아웃소싱 사례가 늘고 있으나 이들 전문업체 가운데 고객사 데이터에 대한 보험가입은 극히 드문 형편이다. SI·IDC 등 주요 아웃소싱 전문업체들은 IT설비의 보험요율 산정기준이 모호하다며 변명하고 있지만, 결국 ‘보험을 생산원가로 여기는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게 보험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비록 산업 역사는 짧지만 IT업계의 체계적인 위험관리 역량을 향상시키고 현재 제한적인 IT보험상품도 적극 개발, 보급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현황=IDC와 같은 전산시스템 위탁의 경우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분쟁의 유형은 피해발생시 입주사의 책임규정 한계와 피해보상 측정기준이다. 워낙 유형별로 적용기준이 다른데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피해보상이라 항상 논란이 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한 분쟁의 경우 데이터망실로 인한 영업손해가 수천만원에 이른다는 고객사의 주장과는 달리 한 운영업체는 월 이용료만 면제해주는 식의 협상조건을 제시해 시각의 큰 편차를 보였다.
사후대책인 보험에 대한 인식도 바닥수준이다. IT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탄생한 전용보험(배상책임보험)은 상품으로 선보인 지 1년을 넘어선다. 삼성·LG·현대·쌍용 등 주요 보험사들이 시판중인 보험상품 가입업체는 현재 50여곳 정도. 명칭은 다르지만 대부분 사이버증권·IDC·인터넷쇼핑몰 등 유사시 사고위험이 높은 업종 위주로 전산업체들의 과실에 따른 보상이 공통적이다. 이들 보험상품의 경우 고객사 데이터망실에 따른 보험금 지급도 가능하다.
IT 전용보험외에 건물화재보험도 대부분 가입은 돼있다. 다만 물리적인 시설외에 전산장비까지 포함하는 종합 대물보험 가입실적은 극히 드문 형편이다. 한국통신 분당센터가 건물화재보험에만 들어있을 뿐 전산장비는 제외돼 있다는 점이 단적인 사례다.
◇문제점=시스템관리(SM) 등 아웃소싱 업무가 많은 SI업체 가운데 IT 전용보험에 가입한 곳은 삼성SDS가 유일하다. LGEDS·SKC&C·현대정보기술 등 대다수 SI업체들은 자사 건물의 재물보험에 가입한 정도다. 이들이 대행·운영하고 있는 고객사 데이터가 유사시 사고를 당하더라도 배상해 줄 길이 막막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LGEDS측은 “보험가입을 위해 적합한 보험상품을 물색중”이라며 “다만 보험료가 원가에 포함될 경우 결국 고객사 부담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보험가입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아웃소싱이 주업인 IDC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통신·데이콤·하나로통신 등 주요 IDC업체들은 IT 전용보험상품에 가입은 하고 있지만 유니텔을 제외하면 보험금 지급한도가 20억원에도 못미친다. IT 자산가치가 점증하는 상황에 사고가 나면 고객사에 최대 20억원내에서 배상해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이들 보험상품은 일상적인 위험에 국한된 것일 뿐 테러나 자연재해, 정치적 변수 등으로 인한 사고위험에는 보험사나 IT업계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보험료 산정에도 어려움이 있을 뿐더러 국내 상황에서 IT업체들도 필요성을 별로 못느끼기 때문이다.
◇대책=무엇보다 위험관리에 대한 IT업계의 전향적인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산시스템 위탁시 우선 계약주체간 SLA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함은 물론 보험가입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LG화재 관계자는 “보험상품이 부족하고 요율산정 기준도 다소 모호한 면이 있지만 IT업계의 수요가 극히 드물다”면서 “전통산업과 비교할 때 특히 국내 IT업계의 위험관리 마인드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부 아웃소싱이 주업인 SI·IDC업체들의 경우 사내 위험관리 전문인력부터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일상적인 사고수준을 넘어서는 재난재해에 대비, 보험상품 개발이나 약관제정 등을 위한 업계 공동의 노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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