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23)ISP 20년

 인터넷 인프라의 대표적인 분야인 ISP는 그 발자취가 바로 국내 인터넷의 역사로 불릴 정도로 뿌리가 깊다. ISP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으로 분류돼 신고만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ISP는 정책적인 진입(인·허가제)을 두고 일정 기간 시장에서 독점 지위를 보장하는 시내와 시외전화, 국제전화와 같은 기간 통신 서비스와 차이가 있다. 한 마디로 ISP는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돼 서비스 초기부터 완전 경쟁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런 경쟁 환경은 개방 네트워크가 특징인 인터넷망의 속성과 맞아떨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ISP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국내에 처음으로 인터넷망이 도입된 시점은 지난 82년. 서울대와 구미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KIET) 전신간에 SDN망을 구축한 것이 시발이다. 이 후 94년 한국통신·데이콤·아이네트·넥스텔 등 상용 ISP가 등장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인터넷의 문호가 열렸다. 95년 7월에는 한국통신의 공중 데이터망(Hinet-P)이 사업자에게 개방, 원클릭 형태의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ISP가 잇따라 출현했다.

 이어 96년 한국PC통신, 나우콤, 한국무역정보통신 등이 추가적으로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해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결성된 국제 컨소시엄 ‘커머스넷’의 국내 지원 조직 커머스넷코리아가 설립돼 본격적인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97년에는 인터넷 사업자와 단체의 협의체인 ‘한국인터넷협회’가 발족해 사업자간 다양한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협력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98년에는 IMF 한파로 ISP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벤처 붐을 타고 각종 애플리케이션과 멀티 콘텐츠의 다양한 응용 서비스가 출현해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잠재적인 수요를 높였다.

 98년은 ISP의 접속 경로 면에서 의미를 갖는 해다. 98년 이전까지 접속 경로는 대부분 기존 PSTN 망을 경유해 일반전화 접속을 통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014XY망을 이용한 접속, 일반전화 접속, 데이터망의 인포숍 방식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최대 56Kbps의 모뎀 접속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네트워킹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터넷망에 접속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먼저 98년 3월 두루넷이 한전의 자가망을 임차해 케이블 TV 방식의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케이블 TV망을 새로운 접속 경로로 이용했고 99년 4월 하나로통신이 동축케이블의 고주파 대역을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ADSL 서비스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또 한국통신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유선망을 통해서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음영지역을 대상으로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99년 8월 도심 밀집 지역의 가입자망 고도화를 위해 허가한 B-WLL도 무선 대체 가입자망으로 시범 서비스중이며 이동전화의 무선 데이터 접속 서비스도 기술적인 문제만 일부 보완된다면 유선과 동일한 수준의 접속 서비스를 제공할 전망이다.

 이런 접속경로의 다양화는 서비스별 요금, 품질, 콘텐츠의 차별화를 유발하고 이용자가 자신에 적합한 서비스의 선택 기회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편익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또 ISP에게도 경쟁 도입의 확산으로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과 접속경로 고도화를 촉진하게 하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특히 2000년에는 초고속 인터넷 접속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동전화의 부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무선 인터넷 접속 서비스도 증권, 게임 등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용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 일반 전화 접속 ISP에게 한국통신·하나로통신·두루넷 등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망을 개발하는 정책적 논의가 진행중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시장 경쟁력 어느 수준인가.

 국내 인터넷 인프라 수준은 미국에서도 테스트 베드로 이용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인터넷 접속 서비스 시장이나 사업자 규모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이다.

 지난 94년 6월 한국통신이 처음으로 상용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국내 인터넷 접속 서비스 시장은 급격하게 확대됐다. ISP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95년 13개에 불과하던 ISP는 해마다 증가해 2000년 10월 현재 80개 업체에 달한다.

 국내 ISP 시장 규모도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인터넷정보센터에 따르면 96년 194억원에 불과했던 ISP시장은 99년 22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또 과거 ISP 업계는 지나친 요금경쟁으로 인한 수입감소와 라우터, 회선 임차료 등 인터넷망 구성비 증가로 적자상태를 유지했으나 98년을 기점으로 점차 순익을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ADSL, 케이블TV 등 광대역 접속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ISP들이 제공하고 있는 일반 전화접속 방식의 성장세는 점차 둔화되고 있

다.

 ISP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가 바로 PC통신이다. PC통신은

두 대 이상의 컴퓨터가 공중 전화망 또는 데이터망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비디오 텍스’로 불리다가 90년대 초부터 PC통신으로 정착됐다. PC통신은 데이콤의 천리안이 88년 6월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92년 한국PC통신의 하이텔, 94년 나우콤의 나우누리, 95년 7월 한국통신의 하이텔 정보세계와 인포샵 서비스, 96년 삼성SDS 유니텔이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체제를 갖추었다. 이후 97년 SK텔레콤이 인터넷 기반의 PC통신 서비스인 넷츠고를 개시해 본격적인 PC통신 시대를 열었다. PC통신은 인터넷과 달리 유료 회원이 대부분이어서 ISP의 수익 기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PC통신 가입자는 인터넷 붐과 맞물려 주춤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성장해 ISP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가입자 규모 역시 세계 시장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어 국내 ISP 시장을 밝게 하고 있다. 국내 ISP에 대한 밝은 전망은 시장조사 데이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 자료에 따르면 아태지역의 99년 ISP는 2640만 가입자에게 인터넷 접속과 서비스를 제공, 39억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0년 말까지 시장규모는 4750만 가입자까지 증가해 약 60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ISP 가입자 수를 가지고 있으며 2004년경에는 중국 다음으로 가입자 수가 많을 것으로 내다 봤다.

 

◆당면 최대 과제는.

 국내 ISP의 가장 큰 과제는 수익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시장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사업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무분별한 덤핑 공세에다 경쟁사 고객을 무차별하게 가로채는 등 불미스러운 일까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가입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정해져 있는 전용선 시장에서도 가격파괴 현상이 극심해졌다.

 또 일부 사업자는 다른 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고 있는 경우에도 사용료 할인과 더불어 ‘안정화 기간’을 내세워 두세달 정도 무료 서비스를 제공, 이 기간 사용료를 위약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있는 실정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안정화 기간이라는 것 자체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점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실정이다. 할인율도 기존 사용료의 10%에서, 대형 고객에 한해서는 절반 가격에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 문란해지면서 지난해 말부터는 대리점도 특정 ISP에서 벗어나 여러 ISP들의 대리점으로 다중 계약을 취하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무분별한 경쟁과 허술한 영업관리 체계는 결국 국내 ISP의 경쟁력을 빼앗아 가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여기에 국내 ISP 분류가 명확한 기준이 없어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례로 우리나라는 ISP 서비스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를 합쳐 ISP로 부르고 있지만 미국만 해도 T1, T2, T3 등 트래픽과 회선에 따라 ISP를 세분화하고 있다.

 ISP망 역시 국내 데이터센터와 콘텐츠 공급자의 지속적인 증가, 인터넷 중심의 서비스 확대로 효율적인 망 연동이 필요하지만 아직도 불완전한 실정이다. 이밖에 서울과 수도권 위주로 망이 구축되고 정부 차원의 별다른 정책지원이 없는 점도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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