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뛰어넘자>IT `태극 깃발` 휘날리자

 김영수 바라볼티모어테크놀로지스 사장(44)은 1년에 한번꼴로 여권을 새로 만든다. 여권을 들춰보니 한자 투성이다. 한면을 차지하는 중국 비자와 출입국 관리국 도장이 넘쳐 너덜더널하다.

 김 사장은 이제 출장 때마다 비자를 받는 불편에서 해방됐다. 1년짜리 비즈니스 비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권만큼 그의 사업도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그는 중국에서 기업용 인터넷 솔루션 사업을 한다. 3년 6개월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때엔 전공인 공개키기반구조(PKI)사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신용카드 사용이 거의 없자 기업용 인터넷 솔루션으로 사업을 바꿨다.

 그렇지만 곧 후회했다. 합작사 하나 세우는 일이 만만찮았다. 포기할 즈음 일이 성사됐다. 우연히 친해진 한 국영기업 반도체연구소장이 합작을 제의했기 때문이다.

 “인상이 좋아 사업과 관계없이 만났는데 먼저 합작 얘기를 꺼내더군요.만난 지 8개월 만이었습니다.”

 합작 이후 비교적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제 그는 진출시 자신의 경험을 되풀이할 국내 IT기업들을 돌봐줄 정도가 됐다.

 김 사장과 같은 벤처기업가들이 최근 중국으로 쇄도하고 있다. 국내 벤처 붐이 꺼지면서 부쩍 늘어났다. 중국의 제2 주식시장인 차스닥에 진입하려는 국내 벤처기업만 100여개를 웃돈다.

 벤처기업가들은 이미 진출한 대기업 주재원들과 함께 중국 IT시장 진출의 최일선에 서 있다.

 줄잡아 베이징·상하이·톈진·광저우 등 중국인이 경영하는 한국 음식점까지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은 많아졌다. 

 중국 진출 초기에는 보따리장수와 제조업체가 많았다. 현지의 낮은 임금을 이용해 만든 의류 등 일용품을 사 한국에 들여와 팔거나 수출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업체들은 본격적으로 중국에 투자하면서 재중 한국인들이 크게 늘어났다.

 초기 주재원들은 문화 차이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그 경험은 고스란히 후배 주재원들에게 이어져 대중 경제 교류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제는 벤처기업가들도 가세하고 있다. 특히 유학생들은 귀국 대신 활발한 현지 사업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방지훈 우노일렉트론 사장(37)은 중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교육용 게임기에 대해 관심을 가진 판매상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있어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중국을 남보다 많이 알게 됐다. 교육용 게임기 사업을 중국에서 펼치고 있는 것도 독자(獨子)가 많아 교육열이 높은 이곳에서 전망이 밝다는 판단에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광저우·선전 등 대도시의 구매력은 전반적으로 높습니다. 특히 자녀에 대해선 지출을 아끼지 않습니다. 한국보다 시장 전망이 더욱 밝습니다.”

 방 사장 같은 젊은이만 뛰는 것은 아니다.

 이승섭 상하이성미전자통신 총경리(55)는 1년전 중국에 와 중계기를 팔고 있다.

 낙천적인 그지만 지금처럼 마음 고생이 심한 적은 없었다. 차이나유니콤의 CDMA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되면서 별다른 실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현지 인맥을 쌓느라 밤낮없이 뛰고 있다.

 그는 “중국은 시간과 품을 많이 들여야 하는 곳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려고 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임직원이든 벤처기업가든 중국에 와 있는 주재원들은 이처럼 중국 사업이 만만찮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보람도 크다.

 5년전 선전에 온 탁정송 선전영란전자유한공사 총경리는 현지 생활이 즐겁다.

 본사(이트로닉스)에 비해 사업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현지 채용한 젊은이들을 통해 어느덧 잊었던 오디오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곳의 17∼18세의 젊은이들은 하루만 교육을 받아도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진지하고 성실합니다. 10여년 전의 한국을 보는 듯 합니다.”

 현지인들도 이젠 제2의 한국인으로 한중 교류의 첨병에 서 있다.

 6척 장신인 왕통 삼성전자 중국통신연구소장(39)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채용한 현지인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려 현지 통신업계의 선망을 받고 있다.

 그는 신식산업부 산하 베이징통신설계원 부원장 출신이다. 안정된 공직을 박차고 외국 업체에 몸담게 된 이유가 뭘까.

 “삼성전자의 cdma2000 1x 기술이 우수합니다. 중국도 이 기술을 필요로 하고요. 그러나 중국의 힘만으로는 개발이 어렵습니다. 기술을 적극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시장 확대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중국통으로 손꼽히는 노용악 LG전자 부회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현지 주재원들을 칭찬한다.

 “너나없이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시장 경쟁이 날로 격화되면서 이곳 주재원들이 힘들어 합니다. 국내 기업들도 조금 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