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고 명문인 칭화대학 졸업생들에게는 기회가 많다.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외국업체에 들어가 매달 8000∼1만위안에 달하는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칭화대 계산기학과 졸업을 앞둔 왕즈푸씨(23)의 최근 노트에는 비장한 글들로 가득차 있다.
‘…중국은 과거 300년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졌지만 장기간의 쇠약을 거친 후 반드시 새로운 성세와 부흥이 올 것이다. 나는 희망이 넘치는 이땅에 남아 처음부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련다. 내가 가는 길에는 가시덤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작은 곤란 앞에서 머리를 숙일 것인가. 나는 전우들과 함께 주저없이 앞으로 전진하련다… 2001년 7월.’
결국 왕씨는 졸업시험 후 몇개월간의 심사숙고 끝에 창업을 결심했다.
“쑨중산은 중화 진흥을 위해 몇번이나 해외에 망명했고 마오쩌둥도 중국 해방을 위해 30여년을 싸웠다”라며 용기를 내보기는 하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회사를 직접 차리려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도 해 보았다. 돈 때문일까. 물론 창업자들 중 일부는 천만,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돈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칭화창업원 뤄젠베이 주임선생의 충고는 그가 창업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창업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뤄 주임은 “중국 대학에는 우수한 인재들과 놀라운 연구성과들이 많다. 하지만 창의력 있는 기업과 기업인 없어 훌륭한 인재와 지식이 그대로 사장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용기있는 많은 학생들이 가능한 창업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창업회사가 실패하더라도 좌절해 본 경험이 있는 우수한 디지털 리더의 용기와 자기 기술로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본 고급 기술자의 노하우는 중국 IT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그는 확신한다. 컨설턴트, 재무관리, 변호사, 자산평가회사 등 관련업체들을 창업원내에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무료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칭화창업원에서 벤처 설립을 준비하는 바이딩둥씨(22)도 “IT를 비롯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성공한 학생창업기업은 아직 드물지만 주차장에서 창업한 학생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텔, HP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은 물론이고 스탠퍼드나 실리콘밸리가 지금처럼 유명할수 있었겠냐”고 반문한다.
중국 대학생들의 창업 열기는 비단 칭화대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칭화대가 주최하는 학원창업콘테스트를 비롯해 중앙 정부의 도전대학생창업콘테스트 그리고 중관촌2000과 창업기획콘테스트 등 대학생 창업을 지원하는 콘테스트 종류만 해도 다양하다. 100여개의 대학이 매년 창업 콘테스트에 참가하고 벤처 자금도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칭화대만 해도 이미 500명 가량의 창업 CEO를 배출했다.
중관촌의 대표적 기업들인 베이다팡정, 롄샹, 칭화퉁팡, 칭화즈광 등도 베이징대와 중국과학원, 칭화대 연구원들에 의해 창업된 회사들이다. 중국 컴퓨터산업의 원조인 스퉁그룹 주시두 총재는 “최근 열린 칭화대 100주년 기념식에 장쩌민 주석은 물론 주룽지 총리와 후진타오 부주석, 리란칭 부총리 등 거물급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을 보며 중국의 정치·경제 분야에서 칭화대가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칭화대, 베이징대, 저장대, 난징대, 상하이자오퉁대 등 중국의 명문 대학들은 정부와 기업을 이끄는 두뇌의 요람이자 미래 중국 운명을 좌우할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인터뷰:베이징대 추링(除凌) 교수
베이징대에서 근무하는 추링 교수는 전국 대학도서관을 총괄하는 국가기관인 중국고등교육문헌보장계통(CALIS)의 부주임이다. 1000여개 4년제 대학에 전자도서관을 구축하고 이를 공공도서관과 연결하는 사업이 그가 맡고 있는 임무다.
“중국 대학에는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는 많아도 이번 전자도서관사업처럼 공공 서비스 차원의 IT프로젝트는 드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추링 부주임은 개인적으로 학부시절에 역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도서관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IT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다. 역학 실험을 수행하며 컴퓨터를 다룬 것이 인연이 됐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중국과학원 원사이자 푸단대 교수이던 쑤부칭 교수가 세계를 제패(走通天下)하려면 영어와 계산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예견한 데 많은 학생들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CALIS사업의 경우처럼 중국대학들은 국가연구기관이나 기업들과 곧바로 직결돼 있어 실질적인 연구·개발과 활용이 가능한 것이 대학 IT열풍의 계기가 됐다.
추링 교수는 “베이징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책장만해도 미국 HP가 기부금을 내고 정부로부터 법으로 금지된 특수 원목 사용권을 허락받아 만들어진 공동 작품”이라며 “정부와 기업 모두가 대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칭화대에 비해 정치·인문계열은 강하지만 이공계열이 다소 취약한 베이징대도 최근에는 컴퓨터 및 공학분야와 IT벤처 설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중국 대학의 인터넷 활용
중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가장 편리한 곳 중에 하나가 대학이다. 지난 98년 국가발전계획위원회의 인가에 따라 칭화대학 등 전국 42개 대학을 중심으로한 중국교육과학연구전산망(CERNET)이 구축됐기 때문.
CERNET은 주요 8개 지역망(155Mbps·24라인)을 중심으로 전세계 주요대학과 유명 국제학술조직의 22개 정보사이트가 연결돼 있다. 오는 연말까지 전국 895개 대학으로까지 확산되고 사용자 수도 747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211프로젝트’로 명명된 대학 인터넷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중국 대학들은 기존보다 열배나 빠른 인터넷으로 중요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CERNET망은 대학 도서관, 연구소, 사무실 등은 물론 학생들의 기숙사까지 연결되고 전국대학의 전자도서관 구축사업과도 직접 연계된다. 중국 정부는 이 사업에 무려 3억위안의 자금을 투자했다. 대학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배려가 어떤 수준인지를 실감케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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