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를 준비한다>선진국은 전쟁중-美 "IT이후에도 자신 만만"

 세계의 관심이 ‘포스트IT’로 옮겨지고 있다. IT에 기반한 세계 경제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며 새로운 돌파구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포스트IT가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각국 정부와 업계는 향후 자신들의 위상을 바꿔놓을 포스트IT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에서 배태한 최첨단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생명공학(BT)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고 일본은 제4세대(4G) 이동통신·IPv6·양자 컴퓨터 등 IT분야를 비롯해 나노기술(NT)·로봇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국가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유럽도 미국·일본에 질 수 없다는 각오로 IT는 물론 BT·NT·환경기술(ET) 개발에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이스라엘 등 제3세계 국가들도 IT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발판으로 BT분야에 도전장을 내미는 등 포스트IT가 결코 선진국들만의 잔치는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포스트 IT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총성없는 전쟁이 시시각각으로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

 

 지난 세기 후반을 주도해온 정보기술(IT) 이후의 시대, 이른바 포스트IT시대를 대비하는 미국 정부 및 산업계의 움직임은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IT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담보로 해 생명공학(BT)에 전폭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세계 나노기술(NT) 분야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특히 시장형성이 곧 이뤄질 BT분야는 IT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IT의 우위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 정부와 업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차세대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NT분야에서도 지난해 클린턴 전 대통령이 ‘국가 나노기술전략(NNI)’을 수립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 사업예산을 매년 늘려가고 있다.

 미 정부와 산업계는 IT이후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든 IT시장에서의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판단, IT분야의 노하우를 다른 분야와 접목시키는 작업에 열중이다.

 ◇IT부문은 아직 텃밭=미국 산업계의 자부심이 가장 강하게 심어져 있는 부문이다. 향후 전개될 포스트IT 시대 역시 IT로부터 동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세계 산업계를 주도할 수 있는 고삐라고 보고 잡아당기는 힘을 늦추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MIT는 두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데이터 마이닝, 디지털권 관리, 생물측정기술, 로봇 설계, 미세유체학, 유연트랜지스터, 음성인식기술, 마이크로포토닉스, 컴퓨터 코드 해독 등 차세대 각광받을 것으로 보이는 10대 기술을 선정했다.

 이들 기술은 IT는 물론 NT·BT, 심지어 환경기술(ET)와도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이 때문에 IT분야에 앞서있는 미국과 미국 기업들은 다른 국가에 비해 출발선 몇 발자국 앞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IT분야에서 미국을 돋보이게 하는 부문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웹을 대체할 차세대 인터넷 이용체계 ‘GRID’다.

 GRID는 한마디로 최첨단 네트워크. 엄청난 자원과 인력이 필요한 고난도의 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곳곳에 산재한 고성능 컴퓨터,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전문 인력 등 각종 IT 자원을 고속의 네트워크로 묶어 공유, 활용토록 한 협업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이 “e교육, e과학, e산업, e비즈니스의 기반이 되는 신개념의 사회간접자본(SOC)”, “21세기 국가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IT 인프라”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GRID 분야에서 미국은 슈퍼컴퓨터센터 등 정부출연 연구소를 중심으로 98년부터 다양한 GRI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수십만대의 가정용 PC를 연결해 외계의 생명체를 탐색하는 ‘SETI@Home’ 프로젝트도 있고 이밖에 우주항공국(NASA)의 항공기 통합 설계, 미시간대 등이 참여한 지진 예측 분석 사업도 진행중이다.

 ◇이제는 BT다=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지 두달 남짓한 올 2월, 세계인들의 관심이 온통 한군데로 쏠렸다. ‘인간게놈지도’였다.

 “인간의 유전자 수는 초파리의 2배를 조금 넘는 정도”라는 만물의 영장으로서는 충격적이면서도 초라한(?) 내용은 인간 게놈지도가 인간의 무병장수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는 획기적인 사실 앞에 파묻혀 버렸다.

 인간게놈지도란 유전정보의 총체. 이의 완성으로 질병유발 유전자 규명과 치료제 개발, 환경적 위험요소 규명, 인간의 진화 등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로 인류의 과학·의학사에 획을 그을 만한 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 및 관련 업계의 움직임은 다른 국가들의 그것과 확실히 구별되고 있다. IT 시대의 뒤를 잇는 이른바 BT·NT·ET 등 이른바 ‘4T’중에서도 미국 정부와 산업계는 BT분야가 가장 빠른 시장성장을 보일 것으로 관측하고 대비해 왔기 때문이다.

 BT분야의 밝은 전망을 읽은 업체들이 잇따라 뛰어들었고 대부분은 유력 정보기술(IT) 업체들이었다. 반도체와 인터넷 분야에서 혁명을 낳은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이 또 하나의 거대한 산업의 산파역할을 하고 있다.

 IBM이 100여명의 인력과 1억달러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유전자 연구용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나섰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생물학자들이 필요로 하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정보과학 자문단을 두고 바이오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제휴를 모색하고 있고 컴팩 컴퓨터가 바이오 벤처 투자를 위해 1억달러 펀드를 조성했다.

 IT업체뿐이 아니었다. 인터넷과 컴퓨터 등 IT시대를 연 예언자들도 “이젠 생명공학!”이라고 외치며 속속 BT분야로 자리를 옮겼다.

 슈퍼컴퓨터 개발 및 인공지능 분야에서 명성을 떨쳐온 컴퓨터 전문가 대니 힐스가 유전공학 업체인 어플라이드 마인즈의 부회장 겸 수석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을 대표하는 25명의 과학자로 선정된 프랭크 모스가 생명공학회사를 창업했고 넷스케이프의 창업자 짐 클라크가 실리콘밸리의 인간유전자 연구회사 DNA사이언스의 주요 투자자이자 이사로 변신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물론 공동창업자 폴 앨런,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회장 등도 모두 생명공학 쪽에 투자했다.

 한편 “돈은 미래를 읽는 사람을 따라간다”는 속설처럼 IT시대의 주역들이 BT분야로 자리를 옮기면서 돈도 따라 이동했다.

 비근한 예로 지난 2분기 미국 벤처자본의 14%는 BT분야에 투자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4%에 불과했다. BT분야 신생기업에 대한 투자는 2분기중 14억700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37% 증가했다. 대신 2분기에 인터넷부문에 대한 투자 비중은 48%에서 28%로 줄었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NT분야에서 일본 따라잡기=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지난해 NT 예산을 지난 99년 대비 56% 인상한 4억2200만달러로 이른바 ‘NT국가사업’을 시작했다. 부시 현 대통령 예산안도 이 사업 예산을 매년 늘려 5억1900만달러까지 증액할 방침이다. 일본에 비해 뒤져 있다는 나노관련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 표명이다.

 부시대통령은 국방부 산하에 ‘나노사이언스연구소’라는 종합연구소를 설립,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기술을 기반으로 신재료를 개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휴렛패커드(HP)와 IBM이 NT를 개발중이며 수십개의 관련 신생사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IBM은 플라스틱에 원자 크기의 홈을 파는 디스크 드라이브를 개발중이다. 이 제품은 현재의 디스크 드라이브보다 40배 더 높은 집적이 가능해 결국 기가바이트급 저장용량을 지닌 휴대폰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밀리페드 (Millipede)라고 알려진 이 사업은 2년후 상용화될 전망이다. HP역시 잠수정처럼 생긴 초미세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분자 스위치를 개발한 바 있다.

 ◇선점효과의 극대화를 노리는 ET=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생활패턴의 확산은 환경산업을 새로운 유망 성장산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환경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투자에 적극 나서왔다. 그 결과 세계시장의 대부분을 미국·일본·독일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본격화돼 현재는 많은 기술들이 실용화 단계에 있는 가운데 90년대 초 ‘환경기술 국가수출전략’을 수립한 미국은 기후변화협약 등으로 에너지 기술 혁신이 중대한 과제로 부상하면서 ET를 수출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ET 혁신을 통해 환경보호를 앞당기고 관련 시장을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관련 기술 및 산업의 육성과 수출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에너지, 청정생산 공정, 폐기물 처리 기술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환경 복원 기술개발, 소규모 기업에 필요한 청정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중점 추진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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