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뿜는 전자무역전쟁>(4)전자무역 서비스 주도권 경쟁

국경을 넘어 물건을 사고 파는 무역에서 실제 거래의 주역은 해당 기업들이 아니다. 적당한 납품업체나 주문업체를 접촉해 협상하고, 상품을 주고 받는 주체는 기업 당사자들이지만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모든 뒤치다꺼리는 사실 문서·결제·물류 등을 도맡아 처리한 서드파티들의 몫이었던 탓이다. 전자무역이라 해서 전통적인 무역환경에서 차지했던 이들 서드파티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자무역의 실체는 과다한 문서작업이나 대면접촉에 의존한 오프라인 결제 관행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해소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무역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면서 기존 오프라인 방식의 무역에서 서드파티의 주역이었던 구미 은행들이나 해운업계 등은 전자무역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숨가쁜 경주를 펼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결제·물류업무를 온라인으로 이전해 종전 고비용·저효율 업무구조를 완전히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전자무역 서비스라며 어느 사이엔가 눈앞에 등장한 볼레로(http://www.bolero.net)나 트레이드카드(http://www.tradecard.com), 아이덴트러스(http://www.identrus.com), 이들은 모두 오프라인 무역질서에서 패권을 누리고 있는 다국적 은행이나 선사가 전자무역 시대의 대응책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볼레로, 주도권은 빼앗길 수 없다=전통적인 무역 서드파티의 주역은 은행과 선사. 볼레로는 SWIFT와 TT클럽이 각각 절반씩 출자하고 전세계 80여개 은행·선사·무역업체가 회원사로 참가한 국제 전자무역시스템이다. 직접적으로는 선하증권(BL)의 전자문서화를 기본으로 신용장·송장 등 각종 무역관련 서류와 자료를 인터넷으로 제공한다. 선적서류의 정확성을 높이고 연간 4200억달러에 달하는 서류 취급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지난 94년 태동한 볼레로 프로젝트는 98년 영국에 본사를 설립함으로써 본격화됐다. 볼레로는 지난해 말 글로벌 시범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첫발을 내디뎠고, 최근에는 ‘SURF’라는 새로운 결제솔루션을 개발함으로써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를 대표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빛은행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한진해운 등과 시범테스트를 가진 뒤, 현재 해외은행 등과 협력해 볼레로 서비스 상용화를 적극 타진중이다. 한빛은행 김종완 e커머스센터장은 “각국 회원은행의 거래기업들을 중심으로 볼레로는 분명 전자무역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다만 거래 당사자들이 볼레로 시스템을 전면 채택하지 않는 한 당분간 서류작업과 병행해야 해 정착을 위한 과도기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트레이드카드, 서드파티 패권을 노린다=트레이드카드는 각종 서류 없이 결제관련 일괄 프로세스를 처리해주는 전자무역 서비스. 지난 94년 워버그핀커스·미쓰이앤컴퍼니·미쓰비시·소프트뱅크파이낸스·세계무역센터협회 등이 미국에 설립한 일종의 무역결제용 온라인 카드솔루션이다. 지금은 뉴욕 본사를 중심으로 홍콩·대만·서울·런던·시카고·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트레이드카드는 자사의 무역결제서비스를 ‘무역공급체인(FSC)’이라고 명명한다. 제조·유통·물류기업간 B2B 환경인 공급망관리(SCM)에 빗댄 표현이다. 트레이드카드코리아 김진혁 차장은 “트레이드카드의 특화된 장점은 주문서·적하보험·물류·송장 등 서류 위주의 무역업무를 완전히 없애고 온라인으로 일괄 제공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통한 비용절감·업무효율화 효과는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종전 무역업무에서 은행의 역할을 배제하게 됨으로써 전통적인 주도세력의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은 시장진입의 적지않은 장벽이다. 지난 99년 첫 거래 이래 현재 해외 각 지역에서 거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란=이제 전자무역 주도권을 둘러싼 서드파티들의 경쟁은 산업사회의 중심이었던 유럽·미국만의 잔치가 아니다. 지난 5월 한국·중국·싱가포르·대만·홍콩·일본 등 동아시아 경제강국들은 역내 전자무역 공동 대응전략에 합의, 21세기 디지털 경제블록화를 선언했다.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범아시아전자상거래동맹(PAA)이 전자무역 네트워크 공동 구축을 통해 결제·물류·보안 등 포괄적인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아시아 메가포털’을 3년 안에 구축,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유럽의 EU, 미주의 NAFTA 등에 버금가는 사이버 역내 블록이 조만간 탄생, 글로벌 전자무역 주도권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뉴라운드’로 상징되는 다자간 무역테이블이 본격 진전되고, 오는 2005년 SWIFT 국제결제망이 인터넷으로 재탄생하는 시점이 되면 전자무역 서드파티를 둘러싼 싸움이 국가-경제블록-무역주체들간의 치열한 혼전양상으로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볼레로, 아이덴트러스, 트레이드카드란>

 볼레로의 모태가 된 것은 은행들의 국제결제기관인 ‘SWIFT’와 국제선사협회인 ‘TT클럽’. 볼레로는 기존 무역 결제·물류업무에 대해 전자문서를 기본 제공하고 안전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SWIFT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오는 2004년까지는 종전 폐쇄형 네트워크를 인터넷으로 전면 개편하기로 하고, ‘e페이먼트플러스’라는 결제환경을 준비중이다. 국가간 결제·물류의 중심이었던 은행·해운사들이 무역업무를 인터넷과 전자문서라는 양대 축을 기반으로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 은행들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아이덴트러스도 태생은 다를 바 없다. 지난 99년 설립된 아이덴트러스는 초기 미국·유럽의 8개 은행이 참여한 글로벌 인증서비스로 지금은 합작 참여 은행이 21개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최종 설립인가를 획득함으로써, 경쟁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당초 우려를 불식시키고 순항을 준비중이다.  

 다국적 은행·물류업체들이 선도하는 볼레로나 아이덴트러스와는 달리, 트레이드카드는 미국의 신용카드·정보기술(IT)업계를 등에 업은 무역결제 서비스다. 한마디로 기존 무역거래 관련 문서업무에 의존하지 않고 신용카드 중심의 온라인 결제서비스를 제공한다. 종전 무역업무에서 은행·선사가 차지해왔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데다, 신용장 거래 비중이 비교적 적은 미주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모델이어서 당분간 유럽·아시아 시장진출은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신용장이나 선하증권, 송장 등 무역관련 문서처리가 필요없는 만큼 온라인 서비스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볼레로·아이덴트러스 등과 치열한 시장진입 경쟁도 이어질 전망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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