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수동부품 산업>(1)프롤로그

 충남 보은에서 필름콘덴서를 생산하고 있는 A사의 K사장(52)은 추가 자금지원을 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10일 이상 연체가 있으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만 듣고 돌아섰다.

 지난해 은행돈 9억8000여만원을 빌려 설비투자를 하고 생산에 나섰지만 제품가격이 40% 이상 떨어진데다 수요가 줄어들어 기계를 돌릴수록 한달에 1000만원의 적자만 쌓여가는 상황.

 한달에 700만원 하는 이자도 부담이지만 20여명 되는 종업원과 그 가족을 생각하면 잠이 안올 지경이다.

 K사장은 사업정리를 위해 베트남·중국업체에 설비를 팔아보려 했지만 거저 먹으려 드는 바람에 서너번 상담 후 포기하고 말았다.

 “버틸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깨끗이 정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K사장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공장의 여유부지를 이용해 사무자동화(OA)용 가구 생산에 나서기로 하고 시설자금 및 운전자금으로 2억여원을 투자한 것이다.

 K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처럼 영세한 업체만이 매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삼성전기의 적층세라믹칩콘덴서(MLCC) 공장 가동률은 50%를 밑돌고 있고 이 사정은 다른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시장호황에 힘입어 양껏 늘린 생산설비 때문에 공장 가동률 하락폭은 더욱 커져 체감온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내 최대 부품업체인 삼성전기(대표 이형도)가 전년 동기 대비 매출 25%, 순이익 53%가 감소한 상반기 성적표를 공개했다. 쎄라텍(대표 오승용), 필코전자(대표 조종대), 삼화콘덴서(대표 이근범), 삼화전기(대표 서갑수), 삼영전자(대표 변동준) 등도 삼성전기와 비슷한 성적표를 내놓았다. 표참조  

 전자산업의 토대가 되고 있는 수동부품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수동부품은 I·C·R 즉, 인덕터(Inductance), 콘덴서(Capacitance), 저항(Resistance)을 말한다. 수동부품은 국내 전자산업에서 1.8%(총 97조원 중 1조7000억원, 2000년 전자산업진흥회)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보다도 전자산업에서의 상징성이 강하다. 수동부품이 들어가지 않는 전자제품은 없기 때문에 전자산업의 근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동부품산업이 갑작스럽게 침몰하는 이유는 세계 정보기술(IT)시장의 침체에 의한 수요감소 때문이다. 올초 PC수요 감소라는 경기침체의 적신호가 켜졌을 때 한 부품업체의 경영자는 “수동부품이 안들어가는 전자제품이 있느냐. 수동부품은 눈에 띄게 성장하지는 않지만 7∼8%의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는 특징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은 20∼30% 감소했다.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어디에나 다 들어가는’ 수동부품도 불황기에는 어쩔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만업체는 물론 일본업체들까지 가세해 국내업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일본의 무라타·TDK 등의 MLCC와 도코·다이요유덴의 칩인덕터 등도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세계시장에 저가공세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30% 이상 가격이 떨어져 국내업체들은 이제 생존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도 IT산업이 예전처럼 급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는다”며 “적절한 제품구성으로 사업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과 고부가가치 제품의 적기 개발능력 배양에 더해 장비 및 소재 개발여부가 향후 업체들간의 명암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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