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
중동의 산유국인 이란과 이라크가 벌이고 있는 생산량 결정 메커니즘은 재미 있다. 두 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량을 제한하고 있는 조치에 따라야 한다.
분석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이 두 나라는 원유 생산량을 하루에 200만배럴과 400만배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하자. 이렇게 하면 두 나라의 생산량을 합치면 400만배럴, 600만배럴, 800만배럴이 될 수 있다. 가격은 그것에 따라 각각 25달러, 15달러, 10달러로 변한다. 원유 생산비용은 배럴당 이란이 2달러, 이라크가 4달러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언제나 각자 최선의 이익을 얻으려고 생산량을 조절한다. 양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생산량 조절이며 그것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이익은 8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먼저 이란이 400만배럴을 생산할 경우 이라크가 200만배럴과 400만배럴을 생산하면, 이란은 각각 5200만달러와 3200만달러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란이 200만배럴을 생산하고 이라크가 200만배럴과 400만배럴을 생산할 경우, 이란은 4600만달러, 2600만달러의 이익을 얻는다.
또 이라크가 400만배럴을 생산할 때 이란이 200만배럴과 400만배럴을 생산하면, 이라크는 4400만달러와 2400만달러의 이익을 얻는다. 또 이라크가 200만배럴을 생산할 경우 이란이 200만배럴과 400만배럴을 생산하면, 이라크는 4200만달러와 2200만달러의 이익을 낼 수 있다.
따라서 8가지 결과 가운데 어느 한 나라의 최선의 결과는 자국이 최대로 생산하고 상대방은 최소량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소량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결국 두 나라는 소위 게임이론의 ‘절대우위’전략에 따라 생산량을 상한선(400만배럴)으로 정하게 된다.
그래서 두 나라가 모두 400만배럴을 생산하게 되고 그 결과 이란과 이라크는 3200만달러와 2400만달러의 이익을 내게 된다.
그런데 만약 경쟁관계인 두 나라가 협조를 통해 서로 200만배럴을 생산하게 된다면 이란은 4600만달러, 이라크는 4200만달러로, 절대우위 전략을 선택했을 경우보다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같은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즉 이란이 200만배럴을 생산하게 되면 이라크는 400만배럴을 생산해 이익을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란은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라크는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라크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두 나라는 이기심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 때문에 최선의 선택이 있는데도 그것을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놓이고 만다.
이런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 이 딜레마의 특징은 각자 자기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이 결국 자신의 이익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한 경우보다 나쁜 결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예일대학의 배리 낼리버프 교수가 ‘전략적 사고’라는 저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산업계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현재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처한 입장은 이와 거의 비슷하다.
공급과잉으로 양사가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 가격이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자기가 생산량을 줄일 때 상대방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반도체 생산량 조절은 OPEC에서 원유생산량 협의가 자유로운 것과 달리 드러내 놓고 협의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담합이라는 무거운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이제 삼성과 마이크론은 완벽한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버린 듯하다.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절대우위전략이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반도체 가격 구조가 워낙 좋지 않아 최악의 선택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서양의 게임이론에서 최선의 결과는 이기심을 죽일 때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동양의 필사즉생(必死卽生)과 맞닿아 있다. 동양과 서양의 반도체업체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새겨봐야 할 일이다.
js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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