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30년>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초소형 연산기 혁명은 계속된다

‘덩치 큰 슈퍼컴퓨터 말고 들고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꺼내 계산할 수 있는 손바닥만한 작은 컴퓨터는 어떻게 만들까.’

 1969년 인텔의 연구개발자 테드 호프 박사는 슈퍼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를 대신할 수 있는 초소형 연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슈퍼컴퓨터는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레지스터, 멀티플렉서, ALU, 디코더 등 여러가지 디지털 기능을 수행하는 소자들을 대량 조합해 설계했기 때문에 그 크기가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공간도 꽤 차지, 휴대하거나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때마침 인텔의 경영진들은 일본의 부지컴이라는 계산기를 만드는 전자회사로부터 전자식 탁상시계 CPU를 12개의 칩으로 만들어 줄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인텔은 당시 자본금이나 연구인력이 적었기 때문에 12개의 칩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생각끝에 호프 박사는 부지컴이 요구한 기능을 하나

의 실리콘 칩에 모두 집적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것이 바로 마이크로프로세서(MPU:Micro Processor Unit)의 개념이다. 호프 박사는 곧바로 동료인 페드리코 패긴, 스탠 메저와 함께 본격적으로 고집적회로 프로세서 개발에 들어가 2년여만인 1971년 11월 제품 개발에 마침내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4004’는 2300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됐고 속도는 108㎑로 1㎒의 10분의 1 수준이었으며 공정기술은 10㎛에 머물러 반도체 크기도 크고 생산성도 지금과 비교해서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당시 메인프레임 환경에서 사용됐던 에니악 컴퓨터 만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였다. 정작 이 제품 개발을 의뢰했던 부지컴이 파산한 것이다. 인텔은 이 프로세서를 활용한 새로운 응용제품 개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인텔의 경영진들은 고민 끝에 승부수를 던졌다. ‘4004’를 독자 브랜드로 출시키로 한 것. 인텔은 이 사업에 사운을 걸다시피하면서 ‘칩 안에 컴퓨터가 있다’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인 영업을 펼쳐 나갔다.

 프로그램만 바꾸면 다양한 연산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전혀 다른 용도의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이 조그만 마이크로프로세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경영진의 결정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후 ‘4004’는 ‘4040’으로 발전했고 이듬해인 1972년에는 8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인 ‘8008’이 등장했다.

 오늘날처럼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8비트 상용제품인 ‘8080’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8080’은 버클리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던 게리 킬달이 인텔에 입사하면서 개발한 전용 운용체계 CP/M이 보급확대되면서 각종 연산기기의 CPU로 널리 사용됐다. ‘8085’라는 후속모델도 나왔다.

 이처럼 ‘8080’이 본격적인 상용화의 길을 걷자 이를 개발한 인텔 인력 중 일부가 자일로그로 자리를 옮겨 ‘8080’의 완전 상위호환 CPU인 ‘Z80’을 개발, 내놓았다. ‘Z80’은 운용체계 CP/M에서 작동하고 5V 단일 전원만으로도 구동이 가능해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이즈음 모토로라도 ‘6800’이라는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 내놓았고 다양한 연산기능이 가능한 ‘MC6809’도 개발했다. 또 모스텍도 자체개발한 ‘6502’를 내놓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도 경쟁체제가 도입됐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인텔의 ‘80’계열과 모토로라의 ‘68’계열로 나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그래도 당시에는 자일로그의 ‘80’시리즈가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업체들간 시장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기술발달도 급속도로 이뤄졌다. 1978년에는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인텔의 ‘8086’과 모토로라의 ‘MC68000’이 첫 선을 보였다. 또 자일로그도 이듬해 16비트 ‘Z8000’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인텔은 자사의 칩을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한 엔지니어가 인텔의 창시자인 고든 무어를 찾아와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키보드와 모니터를 장착한 컴퓨터를 내놓자고 제안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무어 회장조차 가정에서 어떤 용도로 컴퓨터를 쓸 수 있을 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인텔은 IBM과 함께 16비트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최초의 개인용컴퓨터 ‘PC 5150’을 내놓으면서 PC혁명을 일으켰다.

 인텔의 ‘8088’은 계산 능력 면에서는 8비트 CPU보다 4000배 이상 빠른 반면 8비트의 외부 확장기기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었으며 IBM의 ‘PC 5150’은 마이크로소프트의 MS DOS 버전 1.25를 운용체계로 탑재했다.

 이 최초의 컴퓨터는 이후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IBM PC 그리고 MS 운용체계 호환이라는 세계 표준을 급부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에앞서 76년부터 애플컴퓨터에 ‘M6800’을 공급,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세력확대를 꾀해 왔던 모토로라는 인텔의 공략에 대응하기 위해 91년 애플, IBM과 공동으로 고성능 프로세서인 ‘파워PC’ 개발에 돌입,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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