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무역전쟁

◆박광선 논설위원

 

 인간이 벌이는 생존경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다툼은 전쟁이다.

 전쟁은 국가·인종·정치·이념·경제·종교·집단감정·우연한 사고 등에 의해 촉발되며 동기야 어찌되었건 불붙기 시작하면 이성은 마비되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처절한 투쟁을 벌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월남전쟁, 한국전쟁, 6일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포클랜드전쟁, 걸프전쟁, 보스니아 내전 등 역사에 회자되는 모든 전쟁이 예외는 아니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러한 유혈전쟁은 동서냉전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끝날 것만 같았으나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평화의 봄은 참으로 요원한 것 같다.

 예고된 전쟁은 또 있다. 총칼없이 치러지는 이른바 경제전쟁이다.

 세계경제의 견인차인 미국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일본이 10년의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비화되기 시작한 총성없는 무역전쟁은 각국이 보호주의 기치를 높이면서 지구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던 무역분쟁이 국가간 보복전으로 확대된 것은 세계경제의 양대축인 미국과 일본에서 연이어 보수·우경화된 신정부가 출범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새로 출범한 양국 정부의 수장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장벽을 높여나간 것이 결국은 상대국의 보복을 유발하고 여기에 또 다른 보복이 가해지는 악순환이 초래되면서 국제 통상질서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장 치열한 전투는 일본과 중국의 무역분쟁이다.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으로 촉발된 이 전쟁은 최근 중국 정부가 일본산 자동차·이동전화단말기·에어컨 등 주요 공산품에 100%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를 더욱 긴장시키는 것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한국 등 외국산 철강제품에 통상법 201조(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시키기 위한 실태조사를 벌인데 이어 최근 후속조치에 나섰으며 유럽연합(EU)이 조선산업 보조금 지급여부를 놓고 지리한 논쟁을 벌이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제지표는 올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이라던 당초 기대를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4월 0.6% 하락했던 산업생산이 5월에는 0.8% 하락하는 등 연속 8개월째 내리막길을 치닫는 등 회복여부가 불투명할 정도다.

 경제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으나 대외적인 여건은 그리 좋지 않다. 특히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경제의 둔화, 동남아 국가의 경제 불안, 유가 불안정,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하락 등 암초가 적지않아 걱정이다.

 불황이 장기화되면 그 이후의 상황은 예측하기 힘들다. 지난 89년 미국이 펼쳤던 대일무역정책이 반증하듯 그 파고는 엄청나다. 당시 미국은 공정거래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일본의 문화와 제도 200여 가지를 바꾸라고 요구했는가 하면 최하 20%라는 식으로 아예 특정 상품의 판매 목표 비율을 정해주는 등 엄청난 압박을 가했을 정도다.

 최근의 경기침체가 과거 역사를 되풀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강경 발언이나 미국 의회에서 슈퍼301조 동원 주장이 잦아지는 것을 보면 압박이 거세지는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우리 통상당국은 심상치 않은 전세계 무역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세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보호무역 강화쪽으로 흘러가는 현상황에 맞게 통상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이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외자유치와 수출증대다. 우리가 전쟁과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것은 60년대부터 시작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70년대 말 최대 호황을 누렸던 중동의 건설경기 붐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 총칼없이 전개되는 무역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kspark@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