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가 요즘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감스럽게도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6개월 상반기의 여러 지표가 입증하고 있다.
물론 잘못된 얘기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많다.
상반기 동안 나타난 여러 수치는 분명 겉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만큼 우리 영화가 크게 신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우리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간의 점유율은 무려 39%. 이는 작년대비 14.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에 비해 미국 직배영화는 29.1%로 지난해에 비해 10%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상반기 미국 직배영화가 우리 영화에 비해 14.4%나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일본영화의 점유율 역시 우리 영화에 비하면 거의 ‘조족지혈’ 수준. 불과 2.3%의 시장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올 상반기 국내 개봉된 영화는 모두 154편으로 서울에서만 1360만명의 관객이 모였다. 이 중 우리 영화는 27편으로 서울 관객수는 532만명.
이같은 수치들은 분명 급격하게 팽창일로를 겪고 있는 우리 영화의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안의 모습도 실제로 그럴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국내 영화계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우리 영화 27편에 해당하는 서울 관객수 532만명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무려 261만명(6월 17일 기준)이 단 한편을 보는 데만 쏠렸다는 점이 바로 그들이 걱정하는 이유다. 영화 ‘친구’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는 서울 전체 관객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친구’의 전국흥행 수치는 이보다 조금 더 가공할 만한 것이어서 현재 800만명을 훨씬 넘겼는데 상반기 우리 영화의 전국 관객동원 수치를 잠정 1100만명으로 집계할 때 결국 총 관객의 80% 정도를 영화 ‘친구’가 ‘쓸어갔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곧 우리 영화의 심각한 편중화 현상이 올 상반기 들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매머드급 흥행작품의 성공이 대개가 배급구조를 ‘독식한’ 데 따른 결과라는 점, 그리고 이같은 사례를 모델로 삼아 흥행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작품의 경우 배급망을 철저하게 독점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친구’는 개봉 당시 전국 190여개의 스크린에 ‘날개’를 펼쳤으며 이는 총 600개에 이르는 전국 스크린 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친구’ 이후 이같은 현상은 국내 영화사업에 있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친구’의 성공사례가 직배영화의 배급망 운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외화 역시 이제 웬만한 작품이다 싶으면 서울 40∼50개 혹은 전국 120∼13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는 것이 기본이 됐다. 현재 개봉중인 ‘툼 레이더’ ‘신라의 달밤’ ‘미이라2’ ‘진주만’ 등 네편이 차지하고 있는 서울 스크린 수는 무려 196개다.
이에 비해 서울의 스크린 수는 총 200여개. 때문에 지금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는 이들 영화 외에 종영을 앞두고 있는 ‘친구’와 외화 ‘15분’ ‘파이터 블루’ 등 단 세편이 고작이다. 박스오피스 순위를 구성할 수 있는 기본편수, 곧 10편 상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멀티플렉스 같은 신형 극장이 이곳저곳에 들어서면서 영화에 대한 관람 선택권이 대폭 늘어났다고 하지만 지난 6개월간 과연 그것을 제대로 실감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36)는 “영화산업의 구조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국 5만∼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중소규모의 영화들이 상존해야 한다”면서 “작은 영화를 싹쓸이하는 식의 지금과 같은 시장구조라면 향후 5, 6년안에 국내 영화산업은 심각한 퇴행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돌파구는 있다. 그리고 희망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결과와 산술적인 지표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지난 6개월간은 우리 영화들이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기간이기도 했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는 비록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은 없었지만 마켓을 통해 괄목할 만한 수출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번지점프를 하다’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개봉작에서부터 ‘소름’ 같은 미개봉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해외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국제영화제에서의 성과는 아예 일상사가 됐을 정도다. 지난 2월 ‘공동경비구역 JSA’가 베를린 경쟁 본선부문을 비롯해 시애틀 등 각종 영화제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고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과 ‘섬’은 각각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와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등에 초청을 받았다. 해외합작을 통한 다국적 영화의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허진호 감독은 자신의 차기작인 ‘봄날은 간다’를 국내 싸이더스와 홍콩의 어플러즈, 일본의 쇼치쿠 등으로부터 합작 지원을 받아 제작을 시작했다. ‘봄날은 간다’를 계기로 한·중·일을 잇는 3국 연합의 제작방식은 보다 활기를 띨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외형적 성장에 힘입어 잠재적이지만 폭발적인 영화산업의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둔 각종 자본이 이곳저곳에서 영화펀드를 구성, 영화계가 최고의 자본력을 만들어낸 기간이기도 했다. KTB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에 만들어진 영화투자전문조합은 17개 정도로 자본규모는 대략 200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대형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이나 ‘로스트 메모리즈 2009’ ‘화산고’ 등은 모두 순수 제작비만 50억∼70억원짜리의 영화들이다.
영화산업은 이렇게 외형적으로는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양극화가 심화됨으로써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위기에 처해 있다.
튜브엔터테인먼트와 동양그룹(메가박스),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 등 국내 메이저급 영화사간의 합종엽횡이 빈번하게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각자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응책 차원일 가능성도 높다.
한편의 영화로 엄청나게 성장한 산업구조는 역으로 한편의 영화로 금세 주저앉을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으면서도 현재의 좌표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것이야말로 바로 지난 6개월간의 한국영화계가 보여준 초상이다.
<필름2.0 오동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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