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이 재미있다고 한다. 특히 국내 10, 20대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독증까지 논의될 정도다. 유럽과 미국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면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의 연보와 작품 리스트는 물론 특정 작품의 콘티와 스토리보드까지 수집하는 열풍이 국내 애니메이션 마니아, 이른바 ‘오타쿠’들에게 불고 있다.
이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필름과 국내 수입 필름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번역의 오류까지도 발견해내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작품 제작의 계보와 작가들의 연계에 대해서는 일본 내 전문가들의 수준을 앞지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와 유럽 일대에서도 이런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의 문화 편식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이들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나름대로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권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더이상 ‘아니메(Anime)’는 일본 애니메이션만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애니메이션 전체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전환되고 있다. 오타쿠들의 집요한 문화권력 만들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지난 99년 1300만명 이상의 일본 내 관람객을 동원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는 개봉 즉시 복제 비디오판이 국내에 유통됐다. 당시 일본 현지 개봉 후 30여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게다가 일본에서도 아직 DVD나 비디오 테이프로 상품화되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통된 ‘원령공주’에는 한글 자막까지 완벽하게 처리돼 있을 정도였다. 그 복제 테이프를 일본 관광객들이 다시 구입해가는 기현상까지 생겨났다.
이는 국내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일본에 직접 가서 개봉작을 보고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 귀국 후 편집 및 자막작업을 시도한 것이 복제 테이프로 유통된 것이었다. 놀라운 문화권력의 마술이며, 이는 곧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집요한 정보 추구 행위를 검증해준 사례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이 급속하게 확대된 이유는 일본 아니메가 보여주는 강력한 시나리오의 이데올로기에 기인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오토오 가쓰히로의 ‘아키라’에 의해 시작된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저항 이데올로기는 록 뮤직·힙합 등과 접목돼 강력한 문화 코드로 등장했다. 결국 국내 중고등학생들에서 사이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지식 정도에 따른 문화계급까지 만들어내게 됐다. 결국 이런 시나리오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문화 지식의 편협성을 넘어 독점된 정보의 공격적 산업 지배 양식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현지의 오타쿠층은 정보의 수집을 넘어서 직접 작품을 제작한다. ‘공각기동대’ ‘아바론’ 등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 감독도 오타쿠며, 이들의 집요한 창작 의욕이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진정한 마니아는 문화상품의 지속적인 재생산에 기여해야 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은 지식의 편협함을 기반으로 문화계급만을 의식화할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계의 새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작가로서 경쟁해야 한다. 우리의 가능성은 마니아들에 의한 새로운 시나리오 이데올로기로부터 출발한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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