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 초기 정권 핵심부에서 우리 사회의 실체를 조사한 적이 있다. 향후 국정지표 설정 및 실현을 위해 청와대는 물론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점검해 본 것이다. 관계자들은 깜작 놀랐다고 한다.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분명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오히려 사회주의 색채가 훨씬 강했다는 것이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극단적으로 보면 한국은 자본주의의 껍데기를 쓴 사회주의고 중국은 사회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한국인은 어떤 나라 국민보다 평등주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오죽하면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을까. 특히 부의 축적 내지 분배 문제로 시각이 옮겨가면 사회주의적 평등주의가 극명하게 표출된다. 부자들은 부도덕하고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독차지했으며 결국은 남의 밥그릇을 빼앗아 그 자리에 섰다는 공격을 받는다. 옥스퍼드사전에도 올라간 ‘재벌’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같은 공격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어는 정도 정당성을 갖고 있다. 그간 한국의 부자들은 대부분 정치권력의 지원과 특혜 등을 통해 성장했고 이는 국민 다수에게 돌아갈 부의 축적 기회를 몇몇 사람이 대신 차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부자들은 일정부분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거나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소비에 둔감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을 ‘거리’가 거의 없었다.
당연히 “경제도 어려운데 부자들은 한장에 수백만원짜리 외제 팬티를 사입는다”는 언론 보도에 국민은 정서적으로 분개하게 된다. 현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수천만달러를 들여 아방궁 같은 집을 짓고,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이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요트를 수집해도 비난은커녕 당연한 것이나 혹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미국인들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경제체제에서까지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도 IT혁명을 통해 부자가 된 신흥 벤처기업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역시 정부의 정책적 도움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몸뚱아리 하나로, 아이디어 하나로 백만장자가 됐다. IT는 한국 사회에서 백만장자로 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열어놓았고 또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정보사회 ‘디지털 부자’들은 ‘아날로그 백만장자’와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후진성을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비록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적 책임성을 인식하고 국가 경제의 그늘진 곳에 눈을 돌려야 한다. 부를 유지하고 대물림할 방도만 찾는다면 ‘재벌’의 부정적 이미지만을 고스란히 답습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확립을 젊은 IT 백만장자들에게 기대해 보자. 부자를 공격하는 사회 분위기도 동시에 바꾸어보자. 부자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적이 아니어야 한다. 디지털과 벤처는 나눔과 공유의 문화가 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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