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평등사회를 만들자>(24)기고-디지털 리터러시

◆유영만-안동대학교 교수, 디지털 학습연구소장

 

 디지털 사회의 출현은 이전의 아날로그 사회에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영역을 부각시키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대두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공간, 즉 사이버 공간을 탄생시켰으며 여기서 이루어지는 삶의 본질 및 양식이 인간적 접촉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삶의 본질 및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없는 공간(placeless space)’이라고 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는 존재방식과 존재들의 상호작용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은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나와 관계없는 허구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디지털이 몰고 오는 변화의 모습과 양상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 중에 단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다. 즉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 주는 사회·문화적 혜택을 골고루 누리지 못하고 특정 계층에 정보가 편중됨으로써 정보 불평등뿐만 아니라 소득격차를 더욱 가중시킴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역기능적 측면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 인프라가 아무리 훌륭하게 구축되고 여기에 접속하는 시간이나 비중이 높다고 해도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는 극복되지 않는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극복되기 위한 기반과 토대가 구축된 것일 뿐이다. 물론 디지털 디바이드 극복의 문제는 모든 사람이 디지털화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디지털 디바이드는 기술적 기반과 인터넷에 어느 정도 접속해서 활용하고 있느냐의 차이라기보다는 디지털 기술덕분에 언제, 어디서, 누구나 접속가능한 정보를 가공하고 편집해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전환하는 정보활용능력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활용능력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디지털의 급류로 인해 우리가 주로 접하는 정보의 형태가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즉 이전의 아날로그 정보에서 디지털 정보로 바뀌면서 이를 가공해서 활용하는 능력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경험영역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정보와는 달리 디지털화된 정보는 정보의 사회적 의미와 정보탄생의 맥락성이 탈색 또는 희석되면서 디지털화하기 이전 아날로그 정보의 본질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삶의 무대, 즉 디지털 삶의 무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새로운 능력을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디지털 디바이드를 극복하고 모두가 디지털 사회가 가져다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된 정보의 해독능력, 비트 부스러기들을 잡종 교배시켜 새로운 정보와 지식으로 전환시키는 능력과 나아가 디지털화된 정보를 매개로 구성되는 커뮤니티의 효과적인 활용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삶의 무대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활용, 충분히 발휘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지칭한다. 디지털 사회가 요구하는 이러한 능력에는 다음 세가지 유형의 능력이 포함된다. 우선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기술의 활용가능성(technical usability)을 높이는 문제와 관련될 것이다. 사이버 공간 또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e메일을 주고 받고 각종 디지털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며, 인터넷을 활용해 다양한 기술적 기능 등을 익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가능성은 단기간의 집중교육을 통해서 쉽게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적 역량(technical competency)이며, 보다 고차적인 디지털 리터러시로 진입하기 위한 기반 리터러시(foundational literacy)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기술적 접근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그 기술을 활용해 초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다양한 정보의 신뢰도를 평가·판단하고 이를 취사선택·편집·가공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의 디지털화, 즉 비트화가 촉진되면서 디지털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보검색 및 감식능력과 새로운 지식창출능력이 체득되지 않고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만들어낸 새로운 리터러시라고 볼 수 있다. 네트상에 존재하거나 유통되는 다종다양한 비트(bit)의 의미를 해독하고 자기 분야에 필요한 정보로 조직화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당면과제나 문제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소위 비트 리터러시라고 볼 수 있다. 비트 리터러시는 한마디로 디지털화된 정보를 활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비트 리터러시가 디지털화된 정보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디지털화된 정보가 종래의 아날로그 정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디지털 리터러시를 습득하고 있지 않으면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폭증하는 정보량과 점점 빨라지는 정보의 유통속도에 위압당해 더욱 더 심각한 정보불안증(information anxiety)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즉 정보량의 폭증과 정보유통속도의 증가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보 검색력, 정보 감식력, 정보 가공 및 편집력, 정보 활용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상적으로 강조되는 ‘정보검색능력’보다는 찾고자 하는 정보의 신뢰성과 타당성, 또는 찾은 정보의 심미적 가치와 효용가치를 평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감식능력’과 주어진 정보를 자신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요리하는 ‘정보가공·편집력’이 이 단계에서 요구하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을 이룬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다양한 정보원을 검색, 추적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편집·가공한 지식을 남과 함께 공유하고 또 다른 삶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 가상의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론을 조성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발휘하도록 조력하는 데 있다. 이러한 유형의 리터러시를 버추얼 커뮤니티 리터러시(virtual community literacy)라고 명명할 수 있다. 비트 리터러시가 디지털 정보를 남과 다르게 가공해 유용한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버추얼 커뮤니티 리터러시는 나눔의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정보나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타인과 정보를 나눔으로써 성숙된 디지털 문화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참여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리터러시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자신이 가공한 정보, 이를 토대로 새롭게 창출한 지식을 남과 함께 ‘나눔’으로써 ‘나뉨’을 방지하고 건전한 디지털 문화를 구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능력을 지칭한다. 아날로그 사회와는 달리 디지털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 등 폐쇄적 연줄 공동체보다는 인식과 관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시공을 초월해 학습한 결과를 기꺼이 나누는 과정에서 성숙된 디지털 문화가 싹틀 수 있음을 인정한다.

 궁극적으로 버추얼 커뮤니티 리터러시는 디지털화된 정보와 관련해 이루어지는 경험영역을 초월해서 디지털 기술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아무런 불편없이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활용하고, 그 결과를 비판적으로 반성하며,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함으로써 종래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영역인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나눔을 통한 건전한 시민사회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버추얼 커뮤니티 리터러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을 습득,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커뮤니티내에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내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나 지식을 남과 함께 공유해 △바람직한 디지털 라이프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사이버 커뮤니티 구축에 일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회·문화적 삶의 양식이 탄생하고 있다. 가상공간이 일상적 삶의 공간과 분리·격리돼 있는 다른 공간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또 다른 하나의 삶의 터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디지털을 통해 읽고, 쓰고,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습득하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규범과 윤리를 습득할 필요가 있다.

 버추얼 커뮤니티 리터러시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일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디지털 사회가 가져다주는 디지털 기회(digital opportunity)를 포착하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사는 디지토피아(digitopia)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습득, 건전한 디지털 커뮤니티가 갖추어야 될 사이버 윤리와 규범을 전파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 더불어 함께 사는 디지털 사회가 건설될 수 있도록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나의 정보와 지식을 타인과 공유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리터러시는 아날로그 시대가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전에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이 등장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습득해야 하는 기반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의 세계가 아날로그의 기반없이는 그 꽃을 피울 수 없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디지털 리터러시를 습득했다고 해서 디지털 라이프의 편리함과 혜택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는 것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기반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삶의 세계가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또는 오프라인과 함께 동반적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접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온라인상에서의 디지털 라이프가 인간적 접촉을 통해 보완되고 강화될 때 디지털의 꽃도 그 화려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이러한 관계는 개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암묵적 지식이 결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서 빛의 속도로 공유되고 창출될 수 없음을 이해할 때 더욱 중요한 의미와 시사점을 지닐 수 있다.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지식수준과 깊이를 보다 빠르고 쉽게 효율적으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문서화된 지식을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한 다음 오프라인상에서 만나 문서화된 지식으로 전달되지 않는 암묵적 지식을 철저한 체험과 적용, 깨달음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문서화된 지식에 표현되지 않았던 암묵적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겸용해야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통합되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를 통해 창출되는 명시적 지식과 효율적 공유과정은 아날로그 상에서 인간적 접촉과 직접적 체험을 통해 창출된 암묵적 지식의 공유과정 기반없이는 여전히 가벼운 접속을 통한 정보나 명시적 지식만이 빛의 속도로 유통되는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점을 요약하면 그림1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그림1에서 가로축은 개인지향적인 활동이냐, 관계지향적인 활동이냐를 지칭하는 것이며 세로축은 각각의 활동이 아날로그공간(오프라인)과 디지털공간(온라인) 중 어디에서 발생하느냐를 지칭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로축을 기준으로 상단(I, Ⅱ)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하단(Ⅲ, Ⅳ)은 아날로그 공간에서 개인이 도처에 산재한 정보를 편집가공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창출하는 활동(Ⅲ)과 이를 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활동(Ⅳ)을 지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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