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상위 200대 제조업체들의 올해 설비투자 특징은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기본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주요 기업들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소기업과 달리 이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과 사업확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를 하는 튼튼한 체질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산업은행이 조사한 올해 설비투자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뚜렷이 나타난다. 산업은행의 조사결과 대기업은 올해 설비투자를 작년대비 8.6% 늘릴 예정이고 종업원 300명 이상 1000명 이하의 중견기업도 올해 20.6% 확대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은 올해 설비투자가 지난해보다 7.9%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IT업계다.
IT업체들은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T산업 자체가 경기에 민감하고 세계적으로 IT업체들의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폭적인 투자위축은 국내 IT산업의 역사가 전통산업에 비해 짧고 경쟁력 또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멀었다는 냉정한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다.
올해 주요 기업들의 설비투자계획은 지난해 26조4684억원보다 5.2% 늘어난 27조8318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수출부진과 내수침체 등 대외적인 불안한 경기요인을 감안할 때 업체들이 설비투자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전통산업계의 설비투자가 매우 공격적이다. 일반기계의 경우 15.9%, 자동차가 11.6%, 석유화학이 12.9% 정도고 조선(50.0%), 철강·금속(55.2%), 정밀화학(63.9%)은 대폭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전통산업계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본 체질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IT산업계는 아직도 불안한 체질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컴퓨터·통신기기는 올해 설비투자액이 24.2%나 줄어들 것으로 조사됐고 반도체는 4.8%, 일반전자부품은 8.1%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수출에 호조를 누리고 있는 통신기기업계의 설비투자가 이처럼 줄어드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반도체야 세계적인 공급과잉으로 설비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휴대폰 등 수출 유망품목인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의 설비투자 감소는 국내산업이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산업역사가 오래된 가전업체들의 설비투자와 좋은 비교가 된다. 가전업체들은 올해 수출상황이 결코 좋은 편이 아니지만 설비투자 규모를 작년대비 10.1% 늘릴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통산업체들이 설비투자를 늘리는 주요 요인은 무엇보다도 설비확장이다.
전체 설비투자에서 차지하는 설비확장형 투자규모는 작년의 57.7%보다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53.5%라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신제품 연구개발 및 생산을 위한 투자로 지난해 13.1%이던 것이 올해도 13.3%를 유지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과 설비확장을 통한 발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다음으로는 정보화투자다. 정보화투자는 지난해 31.1%이던 것이 올해 4.0%로 비중이 높아졌다. 생산자동화투자도 지난해 2.3%에서 올해 2.7%로 늘었다. 제품경쟁력 향상과 효율증대에 필요한 3대 투자(신제품 연구개발, 정보화, 자동화)를 합친 비중은 무려 20%에 이른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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