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교통카드 표준화` 왜 반발하나

 정보통신부의 교통카드 표준화 작업이 기존 교통카드 시장은 물론 전자화폐 등 현재 태동기에 있는 IC카드 유관사업의 시장구도에 태풍의 눈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접촉식(RF) IC카드로 구현된 교통카드는 현재 접촉식을 동시 수용한 콤비카드가 출시되면서 사실상 전자화폐의 킬러애플리케이션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향후 IC카드 산업 전반의 표준화 향배에도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통부가 최근 K캐시를 기본사양으로 채택한 표준SAM 방식을 표준화 방안으로 제시하자, 나머지 업체들은 인위적인 시장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정통부가 IC카드 단말기의 형식승인권이라는 ‘힘’과 전국호환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표준화를 강제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실패사례를 짚어볼 때 표준화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업자간 이해조율의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실현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표준화 구상=정통부의 별도 표준SAM 방식은 현재 지자체와 운송수단별로 제각각 운영중인 단말기시스템에 공통 인식모듈을 심어 카드나 시스템 환경과 무관하게 표준화하자는 것이다. 스마트카드연구소 천보화 부장은 “전국적인 단말기 인프라 비용과 키관리체계의 안전성, 효율성 측면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은 아직 상용서비스도 거치지 못한 금융결제원의 K캐시를 기본사양으로 추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K캐시는 SEED 암호알고리듬이나 칩운용체계(COS), 하드웨어 등 제반 시스템 환경이 순수 국산기술로 구현된 제품으로 사실상 국내표준”이라며 “다만 특혜의혹을 없애기 위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외산 암호알고리듬도 함께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설명했다. 표준SAM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통카드시스템 운영업체와 5개 전자화폐업체들이 각자의 암호키를 제출,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전제하에 단일한 모듈로 설계돼야 한다.

 정통부가 표준SAM을 탑재한 단말기만 형식승인을 취할 경우 신규 보급지역이나 호환을 진행중인 사업자들은 앞으로 반드시 표준SAM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암호키 공개의사를 밝힌 K캐시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자들은 여전히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정통부의 정책방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현실성=교통카드 표준화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여전히 냉랭하다. 표준SAM이라는 기술적 방법론보다 사업자간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현실적 문제의 해결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표준SAM으로 추진될 경우 기존 교통카드사업자와 K캐시를 제외한 나머지 전자화폐업체들로서는 별로 이로울 것이 없다”면서 “특히 비자캐시, 몬덱스 등 해외 전자화폐 상품은 완전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정책 관련부처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점도 표준화 여부를 의심스럽게 한다. 교통관련 주무부처인 건교부는 정통부와 달리 여전히 광역자치단체에 한정한 표준화 방안을 고수,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으며 개별 지자체들과의 의견조율도 남은 과제다. 또 기술적 측면에서도 몬덱스, 비자캐시 등 해외 상품들은 DES를 표준암호알고리듬으로 탑재한 상황이어서 국내 시장만을 놓고 공개가 힘들어 진입장벽 등의 논란을 안고 있다.

 이와 함께 표준SAM은 비록 통합SAM 방식에 비해 비용부담이 적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국 규모의 단말기를 개선하는 데 따르는 비용문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 정통부 안대로 K캐시를 기본사양으로 한 표준화가 추진될 경우, 표준SAM 보급과 함께 K캐시의 ‘14443-B’ 타입 RF를 수용하기 위한 안테나모듈도 전면적으로 보급돼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수익자부담 원칙을 고려한다면 국민의 세금인 정부 지원금 투입이 힘들다”면서 “K캐시를 제외한 사업자 대부분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업계의 출연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망=정통부의 구상대로 교통카드 표준화가 현실화한다면 기존 교통카드사업자 주도로 전개되던 시장구도는 K캐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전망이다. 전자화폐 등 IC카드 관련업계도 교통카드를 핵심 서비스로 제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사정은 마찬가지. 특히 IC카드, 단말기 등 시스템 시장은 K캐시용 상품을 이미 개발, 보급하고 있는 삼성전자, 삼성SDS 중심으로 힘이 실릴 공산이 크다. 그러나 수많은 사업자와 지자체,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K캐시 기본사양의 표준SAM’ 방식은 여전히 현실성이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정통부의 단말기 승인권에 의해 비록 강제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결국 사업자들에 달려있다”면서 “이번 표준화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간의 의견조정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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