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0년을 맞은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호를 타고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신대륙을 꿈꾸는 21세기 한국판 콜럼버스.
한국·일본·중국·싱가포르·대만·홍콩 등 동아시아 6개국을 잇는 거대한 사이버무역망 구축에 과감히 뛰어든 이상열 사장을 이르는 말이다.
동아시아 사이버무역망은 국내 무역자동화의 영역을 국가간으로 넓히고 역내 전자상거래를 활성화시켜 동아시아를 21세기 강자로 만들자는 동아시아인들의 원대한 포부를 담고 있는 청사진이다.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지난 98년 말 무역자동화사업자인 무역정보통신 선장으로 취임한 이상열 사장은 이후 줄곧 제2의 도약을 외쳐왔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21세기를 맞아 한국무역정보통신도 인터넷이라는 바다의 항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삼성경제연구소 상임고문(사장급)으로 잠시 몸을 담았던 전직 관료 출신의 이 같은 선언은 그러나 오랫동안 가상사설망(VAN)에 기초한 무역자동화사업에 익숙해져 있던 선원들로부터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항로를 개척해 놓고 막 돈벌이에 나서려는 때에 무슨 새로운 항로 개척이냐는 식이었다.
“한국무역정보통신은 VAN을 통한 전자문서교환(EDI)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자금도 많이 투입됐고요.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에도 영업이익을 한 번도 못올렸습니다. 망 이용자들이 생각보다 늘어나지 않아 이용료로 수익을 올리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투자금액의 회수는 물론 영업이익을 올리기에도 급급한 때 VAN을 인터넷망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무역자동화사업이 흑자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의 막대한 투자 덕분이지요.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외면하는 것은 도태를 의미합니다. 언제까지나 확장에 돈이 많이 들고 폐쇄적인 VAN 환경을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사장이 취임과 함께 제시한 KTNET의 비전은 이제 동아시아 사이버무역망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꽃망울을 맺고 있다. 정부도 동아시아 사이버무역망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91년 제정된 ‘무역자동화법’은 사실 그 명칭이 ‘무역절차 전산개선법’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무역은 결코 자동화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절차가 전산을 이용해 간편해지고 쉬워지는 것이지요.”
지난 67년 5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 95년 초까지 줄곧 상공부에 몸담아온 그는 통상과 무역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정통하다. 특히 91년 전자정보공업국 초대 국장을 ,92년에는 통상진흥국장을 지냈다. 이 사장의 이 같은 이력은 무역과 통상을 전산화로 개선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KTNET는 VAN EDI 망을 웹 EDI 망으로 전환하는 제2의 도약기에 놓여 있습니다. 동아시아 사이버무역망은 폐쇄적인 VAN 환경을 개방적인 인터넷 환경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누구든지 쓸 수 있는 인터넷 환경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때문에 국가간 무역도 자동화되는 게 당연한 것이지요.”
그는 4.19세대지만 이는 결코 혁명은 아니란다. “VAN은 인터넷 망보다 보안성이 확실합니다. 이 때문에 VAN을 선호하는 업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업체들은 비용이 적게 들고 접근이 쉬운 인터넷 망을 선호합니다.VAN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인터넷 환경을 수용해 확장해나가자는 뜻이지요.”
동아시아 4개국 무역자동화사업자들은 이 사장의 정연한 논리에 흔쾌히 동조했다. 동병상련, 이심전심이랄까. 지난 90년부터 비슷한 시기에 무역을 위한 국가기반 망으로 무역자동화사업을 펼쳐온 이들 4개국은 발전 속도나 처해진 환경도 비슷하다. 북미나 유럽 등에 비해 무역자동화가 발달돼 있는 점, 인터넷 환경에 따라 VAN 환경을 인터넷 환경으로 전환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동참이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일본은 동아시아 내에서 유일하게 구미 국가들처럼 무역자동화를 국가 인프라로 육성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최근 유수의 민간업체들이 무역EDI(TEDI) 클럽을 결성해 무역자동화망 구축을 추진하려 하고 있지요. 물론 경제산업성에서도 20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뿐 아니라 구미 국가들까지도 무역자동화를 국가기반망으로 인식하고 민간 주도의 정책을 제고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97년 G7회의에서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무역자동화망이 매우 효율적임을 지적하고 G7 국가들도 이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선진국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무역자동화는 해당 국가의 관세제도에서부터 무역·물류·금융 등 방대한 산업을 엮어내야만 합니다. 개별기업이나 민간 차원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구미에서는 볼레로라는 민간기업들의 단체가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국가마다 서로 다른 제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굵직굵직한 이목구비가 서글서글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이 사장은 자신의 말을 강조하려는 듯 “동아시아 사이버무역망이 볼레로보다 더 성공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며 가뜩이나 큰 눈에 힘주어 말한다.
그는 아직도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무역자동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CEO들이 모이는 자리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국내 무역자동화 시장은 연간 300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한 비용절감은 지난해에만 4조6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무엇보다 CEO들의 인식전환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4.19회 회장인 정원찬씨와도 막역한 그는 4.19세대의 한 사람으로 뜻있는 인생의 결실을 맺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산다. “한국의 모든 회사에서 무역자동화망을 쓰는 날이 오는 게 마지막 꿈입니다.”
부인 남혜랑 여사(이화여대 심리상담센터장)와 출가해 미국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딸과 장성한 두 아들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이상열 사장은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오늘도 새벽에 댓바람으로 CEO들을 향해 달리고 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프로필|
1998 한국무역정보통신 대표이사
1995 삼성경제연구소 상임고문(사장급)
1993 통상산업부 특허청 항고심판소장, 심리관(차관보급)
1992 상공부 통상진흥국장
1991 상공부 전자정보공업국장
1989 특허청 기획이사관
1985 상공부 주영상무관
1975 미 미시건주립대 경제학 수학
1967 제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63 서울대 법과 졸
1958 경북고등학교 졸
1939 서울 마포구 대흥동 출생
저서:국제산업재산권 분쟁
상벌:1972 근정포장…
1994 홍조근정훈장
가족:부인 남혜랑 여사(45년생)와 2남 1녀
취미:골프, 음악감상
e메일:serilsy@ktnet.co.kr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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