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기초과학 투자는 의무

 “기초과학이 중요하다.” “기초과학을 육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누누이 강조해 왔던 말이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는 기초과학이 발전되지 않으면 무한 기술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또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도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산업구조가 공학 주도에서 과학 주도로 바뀌는 요즘 들어서는 국가경쟁력의 척도가 될 정도로 기초과학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원천기술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이고 보면 기초과학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초과학을 국가정책의 중심축에 놓고 천문학적 액수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우리 정부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구촌 어느 국가 못지 않게 기초과학 육성을 강조해 왔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금액이 해마다 늘어난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질을 분야별로 취합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발표 자료를 보면 과연 우리 정부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해 온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바이오기술·생물학·미생물학·분자생물학·물리학·반도체 및 고체재료 등 6개 첨단과학 분야의 경우 세계 15위권에 드는 한국인 학자가 단 한명도 없다. 물리학과 생물학 등 18개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세계 평균에 근접하는 한국 과학자의 논문이 한 편도 없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분자생물학·지구과학·생물학 및 생화학·약리학·면역학·생태학 등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바이오 분야에서 우리의 학문수준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제적인 학술지에 발표되는 우리의 논문편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SCI(Science Citation Index:국제적 과학기술 논문 인용색인) 논문게재 편수는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평균 피인용도에서 세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기초과학의 현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기초과학 수준이 이처럼 낮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요인은 투자에 인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비가 없으면 아주 단순한 연구도 진행하기 힘들 뿐 아니라 1∼2년간의 짧은 연구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 실험학문이 기초과학이다. 따라서 장기계획을 수립한 후 일관성있게 연구비를 지급해야 하나 우리의 경우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금액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도 일관되게 지급되지 않아 이같은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 GDP에 비춰볼 때 전체 예산의 3.51%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하는 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연구개발 투자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니 정부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비율이 아니라 절대적인 액수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과학기술력을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연구개발사업을 강화하고 아울러 핵심산업기술, 기초·원천기술, 대형복합기술, 공공복지기술 등을 전략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하나 과기부의 올해 예산은 1조원에도 못 미친다. 기초과학 부문에는 이 금액의 20% 정도가 투입된다.

 절대적인 액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기초과학을 외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다.

 사실 우리의 연구인력과 연구비 규모로 모든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과학자를 중심축으로 하는 과학엘리트집단을 형성해 전폭적이면서도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기초과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연구에만 매달리는 과학자들의 학문적 열정도 필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강한 의지다. 기초과학을 선진화하기 위한 하부구조를 조기에 구축하겠다는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우리의 희망이자 의무라는 생각으로 정부 정책의 중심축에 놓고 지속적으로 과감히 투자해야 할 것이다.

 <박광선위원 ks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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