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용 동국대 컴퓨터학과 교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인터넷 이용률이 2위인 캐나다보다 여러 지수 면에서 월등하게 높게 1위로 평가됐다. 특히 이용 가정의 57.3%가 광대역 인터넷을 사용하며 이것은 2위인 캐나다보다 3배 정도 높은 수치다.
이런 결과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한글 입출력이 쉬운 것을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언젠가 북한에인터넷이 열리게 됐을 때 한글 부호계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정보교환에 있어서 엄청난 부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기본적으로 남북의 자모 순서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그 차이를 극대화한 것은 한글을 부호화하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글 창제는 매우 과학적인 사고체계의 산물이다. 정인지 선생은 해례 서문에서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그를 적을 수 있는 문자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렇게 엄청난 글자 집합을 갖고 있지만 ‘배우기 쉽기로는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 먹기 전에 깨우칠 수 있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할 수 있다’ 했으니 두 말은 서로 크게 엇갈린다.
세종대왕은 그 해결 방법으로 과학을 도입, 그 원리를 찾아 해결했다. 한자의 경우 글자 하나 하나를 강희자전에서 나열했지만 한글은 “음양오행의 이치를 바탕으로 기본 소리글자를 만들고 이어서 소리의 거셈에 따라서 확장하니 첫소리 17자, 가운뎃소리 14자, 끝소리 17자가 된다. 끝소리는 첫소리를 다시 쓴다”고 하여 45자가 28자로 된다.
다음에 합자해에서 2∼3자를 합용병서법에 따라 초성자 5219자, 중성자 1413자, 종성자 5220자로 확장하고 성음법에 따라 약 399억 음절자를 생성한다. 이것이 곧 숫자로 천지자연의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근거다. 또한 수학의 집합이론에 따르면 한자는 원소나열법을, 한글은 조건제시법을 사용한 셈이다. 말하자면 소리의 원리를 깨우치고 천지자연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곧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다.
여기서 한글 부호계 제정에 있어 문제란 바로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현행 부호계를 제정했음을 말한다. 결국 넓은 응용 분야를 가진 언어처리 응용에서는 현행 부호계를 사용할 수 없어 여러 가지 부호계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세종대왕이 안다면 뭐라 할지 두렵다. 이처럼 한글 부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훈민정음 해례를 참조하지 않아 현행 한글 부호계는 컴퓨터 내부에서 과학성을 거의 상실해 문자처리 과정의 공학화에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됐다. 특히 유니코드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한글 부호계가 있어 혼란을 야기하고 있고, 더구나 완성형 부호계 위주로 구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현재 언어처리기술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현재 남과 북은 모두 완성형 부호계를 채택함으로써 90% 이상의 부호계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 원리에 따라 낱자소 부호계를 채택한다면 그것을 10%대로 내릴 수 있다.
이런 상태로 국제표준화기구(ISO)에는 남한의 안이 반영돼 있어서 북한이 수정을 요청하고 있지만 늘 거부돼왔기 때문에 북한은 매우 난처한 입장이다. 604주년 세종대왕 탄신 기념일을 맞아 우리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과제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남북은 정보기술 분야의 강국이 되기 위해 정치적 논리가 아닌, 세종대왕이 도입한 과학적 논리에 따라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byunjy@dongg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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