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그의 평소 소신이었던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단호하고 강경한 외교전략을 펼치고 있다. 부시는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바그다드 외곽을 공습했다.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즉각 각 언론의 톱기사로 다뤄지고 있을 때, 부시 대통령은 그의 외교정책에 있어 보다 실질적인 또다른 공격대상을 선정했다. 미국은 간첩혐의가 있는 러시아 외교관 50명을 추방했고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사일 폐기계획에 대한 미국의 재정지원을 재고할 것을 밝혔다.
모스크바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러시아가 현재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려 한다면 미국은 더이상 세계 평화와 발전에 있어 러시아의 동반자인 척 하는 것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대립으로 잃을 것이 별로 없다. 미국은 러시아경제에 깊게 발담그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는 즉각 보복할 만한 입장이 못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같은 숫자의 미국 외교관을 간첩혐의로 추방했다. 러시아 역시 미국과의 직접경쟁으로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럽에 대한 유화정책과 긴장정책을 동시에 펼치면서 유럽으로부터 얻고자 할 것이다.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미국의 태도변화는 또다른 거인인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한편으로 WTO의 가입을 추진하고 외국으로부터 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해협 전역에 걸쳐 미사일 배치를 증가시키고 있다. 베이징과 워싱턴 양측 모두 외교적인 수사를 통해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고 상대를 시험하려 하고 있지만, 어느쪽도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처럼 악화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이번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 사건 이후 양국이 보여주는 태도가 바로 그 증거다.
베이징은 아직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에 맞설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직접적인 대립은 자제할 것이다. 현재는 국내의 정치 장악에 중점을 둬야 할 때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외국과의 잦은 접촉, 잇단 부패추문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게다가 세계 전역에 걸친 경제침체의 확산과 춘궁기는 중국 내부의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며 중국정부는 이를 정적에 대한 숙청의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다.
부시행정부의 평양에 대한 태도는 클린턴행정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워싱턴의 태도변화는 한반도 화해와 경제협력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한국경제가 추락하면서 동반추락하고 있고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씨의 타계로 그 강력한 협력자를 잃게 됐다.
상호공조확인에 실패한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한 평양의 반응은 서울과의 장관급 회담의 갑작스런 연기로 나타났고, 이는 한국의 야당과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반대해온 세력들에 힘을 실어 주었을 뿐이다.
미국의 정책변화가 서울과 평양 각각의 내부 정치세력 사이에 반목을 불러왔고, 이러한 반목은 결국 향후 워싱턴의 보다 강경한 정책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극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외교적 반목이 싹트고 있다. 대립·협력·반목 등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국·북한·한국·대만이 일본의 극우보수회귀 움직임을 두고 같은 우려를 하고 있다. 일본의 최근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집단적 자위권 인정 추진 등은 주변국들의 극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보수회귀현상은 세계에서 두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자국경제가 10년 이상 오랜 침체를 겪고 있는 데 기인한 것이다. 이는 경제침체 때문에 일본이 여러면에서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두드러졌다.
미국경제의 실질적인 추락은 일본에 중대한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미국은 일본상품의 수입을 줄일 것이 분명하며, 또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대체로 일본에 위험한 정책을 시행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극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인하는 미국으로의 투자를 일본으로 향하도록 만들어 일본으로서는 이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금리는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이 흐름에 걸림돌이 된다. 동시에 금리인하는 의심할 여지없이 유럽통화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켜 일본의 수출보다 미국의 수출을 북돋울 것이다. 일본의 금융제도가 미국과 유럽의 이러한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미국은 그 정책수행에 있어 본의 아니게 일본경제의 몰락을 촉진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로 인해 미국의 경기회복이 조금 더 늦춰질 수도 있으나 일본을 완전히 파탄시키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일본경제의 붕괴는 세계경제의 침체를 더욱 깊어지게 하고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의 정치·경제·외교의 현안들은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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