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지상파TV 전송방식 필드테스트가 사실상 어렵게 됨에 따라 디지털방송 실시 이후에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책임공방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방송기술과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방송기술계와 시민단체들의 디지털 지상파TV 전송방식의 필드테스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음에 따라 디지털방송 실시 이후에도 시민단체들이 사사건건 이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진행상황=디지털 지상파TV 전송방식의 필드테스트는 지난해 초부터 방송기술인연합회가 중심이 된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시민단체들은 처음에 정통부에 필드테스트 실시를 요구했으나 정통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통부는 지난해 8월 ‘디지털방송 전송방식 재검토 주장에 대한 정통부 입장’이란 발표문을 통해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방송관련 단체가 주장하고 있는 첨단텔레비전방식위원회(ATSC)의 잔류측대역변조(VSB)방식 문제점에 대해 “산악지형이 많은 미국에서도 수천회의 검증을 거친 방식”이라면서 “우리나라의 주파수 대역 할당이 미국의 것을 따르고 있고 미국 또는 유럽방식이 장단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밝혔다.
정통부는 또 방송계의 “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유럽방식을 채택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미국방식을 선택한 국가는 미국·캐나다·대만·한국이며 남미와 중국에서도 미국 규격을 정식으로 고려하고 있다”면서 “현재 NTSC 사용국가 중 유럽방식을 선택한 국가는 한 곳도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통부가 정부차원의 필드테스트를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공은 방송위원회로 넘어오게 됐다.
방송위는 이 문제를 놓고 지난 2월 전체회의를 열고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결과 디지털방송 추진주체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방송사업자나 관련단체(한국방송협회)가 유럽식과 미국식에 대한 비교실험을 실시할 경우 합당한 조건 아래 일정부분 재원을 지원하겠다고 결의했다.
필드테스트 실시 문제가 다시 개별 방송사와 단체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들도 자체적으로 필드테스트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결정함으로써 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필드테스트 왜 무산됐나=디지털방송의 전송방식은 기술적인 문제로 정통부가 결정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통부가 이 문제를 재론하지 않는 한 다른 부처에서는 간섭할
입장이 아니다.
방송위도 이 문제로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송위가 독자적으로 필드테스트를 강행할 경우 정통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방송위가 필드테스트를 실시해 유럽방식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해도 정통부가 이를 반영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디지털방송 발전계획에 따라 올해 말까지는 디지털 지상파TV 방송이 실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필드테스트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전송방식을 바꿀 경우 본 방송 실시 시기는 1년 이상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따른 부담이 적지 않다.
또 지상파 방송사간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것도 필드테스트를 강력하기 밀어붙이지 못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MBC의 경우 방송사 중에서 필드테스트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나머지 방송사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송위가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필드테스트를 할 경우 자금 등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으나 전체 비용의 절반 정도만 지원해 주고 정통부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등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향후 전망=다음 주에 열릴 방송위 전체회의에서 방송위가 주체적으로 필드테스트를 하겠다고 결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게 되면 결국 본방송 실시 이전에 필드테스트는 이뤄질 수 없게 되고 방송기술인과 시민단체의 불만은 그대로 남는다.
디지털방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만 발생해도 시민단체들은 필드테스트를 하지 않고 미국방식을 고집한 정부에 불만을 털어놓을 것이 뻔해 디지털방송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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