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저는 이런 격차를 메우는 과학기술의 전도사가 되려 합니다.”
지난 3·26 개각에서 역대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발탁된 김영환 장관(46)은 과학기술자가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학은 쉽고 재미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는 전도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16대 국회까지 줄곧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으로 활약하며 이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시인이자 치과의사·재야운동가·국회의원 등 다양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4권의 시집과 동시집, 2권의 수필집을 펴내기도 했다.
김 장관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비전문인 출신의 정치장관이라는 우려감과 함께 과학기술계를 힘있게 대변해줄 실세 정치인이라는 기대어린 눈길을 동시에 보내고 있다. 취임 이후 정치인답게 파격적인 업무 스타일을 보여줘 ‘너무 튄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준비된 장관으로 무난하게 부처를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국정을 감시하는 ‘칼날 같은’ 국회의원에서 과학기술 행정을 책임진 입장에 선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을 ‘과학기술의 날’을 앞두고 서울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윤원창 과학기술부장이 만나 포부를 들어봤다. 편집자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과학기술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히셨는데.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과학기술력입니다. 과학기술이 모든 산업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이 향상되면 산업경쟁력이 향상되고 이는 국가경제로 연결됩니다. 그만큼 과학기술력 향상은 경제난국에 처해 있는 우리 국민에게 신명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국민과 같이 호흡하고 비전을 주는 과학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취임이래 어떻게 하면 나라의 과학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잡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과 과학기술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과학기술에 대한 평소 철학은 무엇입니까.
▲과기부 장관으로서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은 간단명료합니다. 과학기술 육성만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을 중심에 두지 않고서는 경쟁력 향상과 번영은 불가능합니다. 최근 환율 및 유가상승, 주가하락 등 경제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입국을 통해서만 생존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장관으로 있는 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계획입니다. 앞으로 1년간은 우리 과학기술계가 나아가야할 정확한 비전과 목표를 세워 연구주체에게 임무를 주도록 하는 중요한 기간이 될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경험이 부족해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근 국회 상임위에서 동료의원으로 활동한 야당의원들이 ‘젊은 나이에, 그것도 치과의사 출신이 어떻게 과기부 장관을 할 수 있겠느냐’는 힐난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사농공상적 생각이라는 판단입니다. 정치를 법대 출신이나 정외과 출신만 하라는 법이 없듯이 과학기술부 장관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치의학을 전공한 자연계 출신입니다. 치과의사는 생리학·해부학은 물론이거니와 재료학·물리학·화학 등 다양한 학문을 폭넓게 알아야 합니다. 치과의사니까 과기부 장관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정치인 출신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난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관으로 모든 것을 걸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임기 동안 아무런 대과(大過)없이 무난히 업무를 수행한 장관으로 남기는 싫습니다. 적당하게 경력을 관리하는 식으로 업무를 수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과학기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매진할 작정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어떤 형식으로 전개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현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IT산업 기반을 적극적으로 활용, 국내 과학기술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정책의 중점을 둘 것입니다. 특히 국민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가 총예산의 5%가 연구개발(R&D)에 투자됩니다. 내년에는 5조5000억원 가량이 될 정도로 많은 액수입니다.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만들어낸 돈인 만큼 이를 낭비없이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과기정책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만큼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를 타개할 구체적인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0년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경쟁력은 조사 대상국 47개국 중 22위였습니다. 같은해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투자가 14위인 것과 비교하면 투자 대비 효율이 크게 낮은 편이지요. 저는 국적없는 과학기술은 있을 수 없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연구자들은 항상 투자 대비 효용과 성과를 자나깨나 생각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민이 성과없는 과학기술투자를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R&D 평가체제를 강화,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정부 들어 벤처붐으로 국가연구개발의 주역이 돼야 할 출연연구소가 산업경쟁력을 뒷받침할 기초과학에 치중하기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상품화기술개발에 몰려 있어 이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출연연 구조조정이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널뛰기를 보면 바닥이 단단할수록 상대방이 높이 올라갑니다. 바닥을 다진 게 기초과학이라면 뛰어오르는 것은 응용기술입니다. 핵심기술이 탄탄히 갖추어져 있어야 그 발판위에서 조립기술 등 산업기술이 화려하게 도약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초기술과 응용기술은 진자운동을 하는 시계추와 같습니다. 시계추의 꼭지점이 한쪽으로 높이 다다르면 다른 쪽도 똑같은 높이로 차오르듯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은 시계추의 꼭지점과 같다고 봅니다. 기초과학의 꼭지점이 낮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응용기술이 그 이상 도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치와 같지요. 상용화가 가능한 응용기술도 기초과학의 바탕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응용기술로의 치중은 이러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최근 정부내 기술개발관련 부처들의 움직임을 보면 헤게모니 다툼이 한창입니다. 특히 IT·BT·NT 등 첨단산업 육성 등과 관련해 산자·과기·정통부간 주도권 싸움이 노골적이어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어지럽습니다. 과기부가 조정자로 나설 생각은 없으십니까.
▲미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여러 부서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업무중복으로 인한 예산낭비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통해 조정하고 부처간 네트워크를 활성화, 중복되지 않도록 할 계획입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제7차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대통령도 말씀하셨듯 이제는 부처간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보다는 역할분담을 통해 국가연구개발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IT산업의 기술개발전략 등은 그런 의미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부서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아야 하며 과기부도 조정자로서 과기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타 부처와 중복투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국립서울과학관 건설문제를 해결해 나갈 예정입니다.
-국립서울과학관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국립서울과학관 건설은 이미 타당성 검토가 끝나 건설키로 한 사업입니다. 1800억원 정도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는데 올해안에 가능하면 착수할 방침입니다. 문광부가 추진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이제 검토하는 단계로 6000억원 이상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처가 이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타당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도 부처간 조정을 통해 추진해야 할 것으로 건의했습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만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박물관의 이름과 소관부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유산을 후세에 물려주고 관광자원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설이므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처해 나갈 생각입니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구조조정 후유증이 매우 큽니다. 연구원들은 연구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사기가 크게 꺾여 있고 연구비 확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 과학기술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작정이십니까.
▲정부가 최근 출연연구소의 구조조정을 시도하면서 연구원들의 사기를 꺾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단의 사기진작책은 없습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출연연구소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과 연구원들의 안정된 연구환경 조성,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출연연구소의 식은 열기를 되살리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국회에서 출연연 구조조정문제와 관련해 총리실·과기부 등으로 출연연 관리가 이원화되면서 과기부가 출연연에 대해 너무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출연연이 총리실로 이관된 후 과기부가 출연연 문제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과기부 장관으로서 출연연이 비록 소관부처는 아니지만 이 문제를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과학기술노조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방향이 나오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풀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번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해 연구원들과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압니다.
▲많은 연구원과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출연연구소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과 연구원들의 안정된 연구환경 조성,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기부가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식어 있는 출연연구소의 열기를 되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면서 종전과 달리 배석자 없이 독대를 했는데 무슨 말씀을 나눴습니까.
▲과학기술자들의 사기진작문제와 과학기술인력, 특히 IT분야 고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확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영재교육과 연계해 마련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과학고등학교의 예를 보듯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력 육성정책은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과학기술입국 실현을 위해서는 인력확보가 우선해야 하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영재교육과 교육개혁 결합이 실행되도록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중입니다.
-과학기술자들의 사기진작문제는 매번 신임장관마다 주창해 왔는데 구체적으로 실행된 게 별로 없습니다.
▲과학기술훈장제 도입 등 일부 실행된 게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인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사농공상적인 사고가 만연돼 있습니다. 국가가 이처럼 발전하게 된 데는 연구자·기술인·기능인의 역할이 지대했는데도 제대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앞으로는 이들이 정부의 주요 요직에 발탁되는 시대가 됐으면 합니다. 치과의사는 병원이나 하고 정치는 변호사 출신이나 인문사회계 출신만 하라는 법이 있습니까.
김 장관은 인터뷰 내내 정돈된 논리와 당 대변인 출신답게 막힘없는 유창한 달변으로 답변에 응했다. 또 취임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부산하게 업무파악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정리=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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