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C산업 육성 정책 부처간 중복추진 속출

정부가 정보기술(IT)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주문형반도체(ASIC)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로 하고 앞다퉈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보다는 외형 부풀리기나 모양새 갖추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일부 부처에서는 자체 산하기관이나 단체를 위주로 지원계획을 중복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자금이 형평성 있게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ASIC산업의 실질적인 육성을 위해서는 업계·정부·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역할분담을 통해 경쟁력 있는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지원현황=정보통신부는 지난 4일 ASIC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향후 5년 동안 12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정통부는 오는 6월 서울 서초구 가락동 포스코빌딩에 1600여평 규모의 ASIC산업지원센터를 개관한다.

또 ASIC업체들의 시제품 생산을 위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소속 수탁생산(파운드리) 시설을 97억여원을 들여 확충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ASIC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올해 8억원, 내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10억원씩 총 48억원을 투입해 ASIC산업지원센터내에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번 정통부의 지원책 이외에도 ASIC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부 정책으로는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벌이고 있는 ‘시스템IC 2010’이 있다.

세계적인 우위기술을 민관이 공동으로 만들자는 이 프로젝트는 10개년 계획으로 매년 업체별로 과제를 맡아 개발하고 세미나를 통해 결과물을 공유하는 등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산자부도 지난해 판교 신도시를 중심으로 반도체 집적단지 조성 등을 포함한 ASIC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조만간 ASIC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육성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업계 반응=그러나 정부의 대규모 지원 발표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은 크게 환영의 빛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자금의 규모는 크지만 업체들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정통부의 지원책은 기존에 ETRI 소속으로 있던 ASIC설계지원센터를 벤처 집적시설로 바꾸는 데 대다수 자금이 투입돼 개별업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는 거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업계의 한 사장은 “ASIC설계지원센터를 대규모 집적시설로 바꾸려는 것은 외형 부풀리기 아니냐”면서 “외주 파운드리업체들도 많은데 ETRI에 파운드리 개선자금 97억원까지 투입하는 것을 보면 형평성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40여개의 ASIC 설계업체 이외에도 시스템업체까지 입주시켜 ASIC타운을 만들려는 것은 산업자원부가 판교 신도시를 중심으로 반도체단지를 조성하려던 것에 앞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개선방향=정통부측은 “ASIC산업을 근본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산업 인프라를 강화할 수 있는 집적시설은 필수적”이라면서 “이를 통해 입주업체는 물론 비입주업체들도 종합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이번 정통부의 지원책이 산자부·과기부의 움직임과 같은 선상에서 역할분담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도기술 개발과 후학 양성 등 개별업체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이 아쉽다는 평가다. 벤처 집적시설과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제품 개발에 대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바람몰이식 발표로 업체들에 거품을 불어넣지 말고 세계적으로 특화된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

<정지연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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