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DNA 독트린

‘DNA 독트린’

르원틴 지음, 김동광 옮김, 궁리 펴냄.

산업혁명·정보혁명에 뒤이은 바이오혁명기를 맞아 생명공학의 사회적 영향력이 지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바이오텍(BT)이라고 불리는 생명공학은 생명체를 이용해 의학적, 산업적으로 유용한 소재나 기법을 추출하는 활동을 지칭하며 식량·의약품·에너지 등과 같은 실용재나 대체재의 개발이 그에 포함된다.

생명공학의 효시는 ●슨과 크릭이 유전체의 핵심으로 알려진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53년으로 소급할 수 있다. 이후 유전정보 해독기술과 조작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10년간 유전체 염기배열을 밝혀내고자 하는 게놈 프로젝트가 가속화됨으로써 BT는 IT에 이어 인류문명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적 원천으로 부각되고 있다.

올해 2월 인간 게놈을 구성하는 염기서열이 완전 해독됐다는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이 공표되고 인간의 유전자 수가 3만5000여개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초파리 유전자 개수의 3배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명체의 복잡성은 유전자 수보다 유전자 다(多)기능론, 혹은 유전자 상호작용론에 기인한다는 가설이 보다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르원틴의 ‘DNA 독트린’은 바로 이같은 관점에 입각해 ‘각개 부분을 알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전제 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 DNA 염기서열의 해독에 천착해온 게놈 프로젝트를 통박한다.

자연현상을 분리적으로 고찰하려는 원자론적 사고는 근대과학과 함께 대두해 물질세계에 대한 연구분야를 넘어 생명현상에 관한 연구부문에까지 그 논리를 확장시켜왔다. 따라서 유전자 배열을 알아내면 생명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원주의적 사고가 생명과학에도 잠입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며 개인의 궁극적 결정자는 유전자라는 DNA 담론은 복잡한 생명계 현상을 단일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일원론적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결코 완벽을 추구치 않는다’는 생명체 진화의 현실을 외면하고자 했다.

또한 게놈 프로젝트는 유전자 구성을 밝히게 되면 생명체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설파함으로써 현실적 의식을 벗어난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한다. 그 결과 우리는 인류를 괴롭혀 온 결함 유전자들의 위치를 파악, 불량 유전자를 교체하기만 하면 온갖 질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에 더해 DNA 염기서열의 해독을 통해 범죄자·실업자·약물중독자 등의 사회적 부적격자들을 가려내는 사회적 우생학이 융성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의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이 유전자 안에 부호화돼 있기 때문에 생명체는 원천적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불변성 신화를 함유한 DNA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함정을 이 책은 강하게 통박한다.

말이나 글이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행사하듯 동일한 DNA 메시지도 실상은 그 기능이 복합적이며 그것은 또 주어진 환경이나 상호작용에 따라 상이한 기능을 발휘한다. 따라서 생명체는 그 내외적 조건에 따라 실로 엄청난 유연성을 발현할 것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선도자 중 한 사람인 벤터 박사가 “인간의 유전자 수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작다”고 토로한 것도 바로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천형으로 인식돼온 각종 유전병이나 난치병들이 유전자 구조의 해명을 통해 적절히 예방치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놈 프로젝트의 낙관적 전망은 마치 복음과도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질병과 노화로부터의 해방’이라든가 ‘무병장수시대의 개막’과 같은 청사진을 제시하는 DNA 독트린은 분할적 작업을 통해 사물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자연관의 현대적 버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산업혁명기 이래 인류는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해 환경오염·자원고갈이라는 혹독한 생태계 위기에 직면해왔다. 여기에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이 점증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인간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로 인해 또다른 유형의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부연되고 있다. 유전정보에 관한 과도한 집착은 제도적 실패를 개인의 실패로 단죄함으로써 제2, 제3의 인종청소(holocaust)를 야기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DNA 독트린’은 그같은 거대과학의 해독에 관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때때로 문화결정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강성 기조를 견지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형성중인 유전자 연구가 독단의 늪에 빠져들지 않게끔 하는 값진 고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게놈시대, 혹은 포스트 게놈시대의 비판적 동반자로 우대할 가치가 큰 책이라고 생각된다.

<고려대 김문조 교수 pkim8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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